오패산터널 총격 사건
2016년 10월 19일 오후 6시 반쯤 서울특별시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성병대(46)에 의해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폭력 신고'로 출동했던 경찰관 중 김창호 경감이 순직했다.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전 총격 사건의 범인이 행한 폭력과 관련된 신고였다. 또 총격 신고가 아닌 폭력 신고로 접수되었다 보니 경찰관들이 방탄복을 입지 않은 채 출동하여 총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범인의 둔기 가격과 총기 난사에 행인(71세, 남성) 등 시민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민간인총기난사 사건이다. 이전의 사건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현장을 지나다 휘말린 무고한 민간인도 있었다.
한편 , 민간인이 아닌 군경을 포함한 대한민국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은 우순경 사건(1982년)이다. 이 사건의 범인인 우범곤은 노르웨이 연쇄 테러(2011년)의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로 인해 기록이 갱신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연속살인범으로 기록되었을 정도.
YTN의 단독 보도로 사건이 최초로 알려졌다. 관련 영상. 첫번째 사진은 속보로 사건을 소개하는 장면이고, 두번째는 피격당한 경관을 지나가던 시민이 구호하는 장면, 3~4번째는 범인이 버려둔 사제 총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2.1. 사건 이전
범인 성병대(당시 46세, 이하 모두 사건 당시 나이)는 과거 강간을 저질러 2001년 2월 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간등)죄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같은 해 5월 8일 판결이 확정된 성범죄자로, 집행유예 기간에 또 미성년자 성폭행을 저질러 2003년 6월 12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청소년강간등)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같은 날 위 판결이 확정되었으며, 이로써 집행유예 판결이 실효되어 복역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또 무고죄로 2004년 11월 5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추가 선고받았는데 복역 중에는 2007년 6월 21일 창원지방법원에서 교도관을 샤프로 찌르고 이를 제지하는 교도관을 폭행하여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야간집단. 흉기등상해)죄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추가 형기까지 끝난 2012년 9월 12일에야 안동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9일 대구고등법원에서 전자발찌 부착명령 3년 선고를 확정받았다. 2014년 4월 14일 ~ 2017년 4월 13일까지가 착용 기간이었다.
그는 출소한 이후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떡집 3곳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근무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었고 본인 돈이 아닌 대출을 받아 증권투자도 시도하였으나 수익을 내는 데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2015년 5월부터는 별다른 직업 및 소득 없이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월세가 더 저렴한 주거지로 옮겨야 했으므로 누나 등의 독촉에 따라 2016년 2월경 새로 이사할 주거지를 정해 임차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매달 17만 원의 월세를 지급할 부담이 생겼다. 그런데 원래 거주해 왔던 곳에서 퇴거하지 않고 이사를 계속 미루고 있었던 탓에 기존 주거지 월세 25만 원도 여전히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해졌다.
아무런 안정적인 소득원이 없는 상태에서 2016년 4월경 이후에는 형제들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다시 한 달이 지나자 과거 대출받았던 채무금의 이자가 연체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성병대는 집주인에게 보증금 300만 원 중 70만 원을 선지급해 줄 것과 연체된 월세는 남은 보증금에서 공제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한편으로 관할 구청에 ‘긴급생계지원’을 요청하여 3개월간 매달 약 41만 원을 지원받는 등의 방법으로 급한 생계비를 일부나마 마련할 수 있었으나 8월 이후에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도 더 이상 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직업을 가지려는 시도도 하지 않아 극심한 생활고는 계속되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 대신 이 형편이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겠다고 생각하며 자포자기하자 성병대는 이와 같은 경제적 위기 및 사회 부적응 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았던 성폭력 범죄를 수사했던 경찰이 배후에서 조직적으로 이를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기괴한 망상을 하기 시작했고 경찰에 대한 깊은 원망을 품게 되었다.
성병대는 먼저 성범죄 수사를 개시했던 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자신을 상대로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망상해 이들을 칼로 죽이려고 마음먹고 2016년 5월 서울 강북구 한 가게에서 사시미칼(칼날길이 21.5cm) 4점을 구입한 후 살해하는데 쉽도록 손잡이 부분을 덧붙여 기다랗게 만들었다. 거기다 경찰로부터 총을 탈취하는 시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정확한 총의 사용법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비슷한 시기에 한 가게에서 리볼버 형태를 지닌 비비탄총을 구입하였다.
이후엔 구입한 리볼버 총기를 살상용으로 개조하기 위해 2016년 5월 30~31일에 걸쳐 필요한 재료 등을 준비하였는데, ①먼저 살상력 향상을 위한 화약이 필요하자 장난감용 폭죽들을 구입하고 ②총열과 탄알로 사용할 알루미늄 파이프와 베어링을 금속공구상가에서 구입하였으며 ③일종의 유사 총신 등의 소재로 사용할 목재를 공사현장 등에서 마련하였다.
또 총기 제조 및 개조방법 및 정확한 사용법을 학습하고자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약 2개월간 검색하면서 사제 총을 만드는 방법을 파악하였고 이와 같은 준비과정을 통하여 결국 8월 중순부터 9월 하순 사이에 집에서 사제 총기 및 사제 폭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한편 성병대는 2014년 2월 15일 당시 거주지에 입주할 당시 이곳에 대한 소개 및 임차계약 알선을 한 부동산 중개인이 자신의 옆방에서 근무하던 이 모씨(여, 67세)와 동일인인 줄로 착각하고 인사를 청하였다. 그런데 이씨는 그의 주거지를 중개하지 않았고 성병대가 임차계약을 맺은 이후인 2014년 2월 20일부터 그 부동산을 승계하여 운영했기 때문에 일면식이 없는 사람의 인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문제는 성병대가 이씨로부터 경멸을 당하였다고 생각하고 매우 강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씨와는 교류 없이 지내다가 2015년 7월경 주거지 건물에 대한 전기계량기 설치 문제로 이견이 발생하여 서로 말다툼을 벌였고 그 무렵 이씨로부터 성병대가 거주하는 방 앞에 설치된 공용화장실이 더러워진 원인이 너에게 있다는 듯 한 말을 듣고 그에 대한 극심한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성병대는 빈곤 및 사회부적응 등 일련의 불행한 상황이 이게 다 '억울한 강간 누명'을 씌워 자신을 체포한 경찰서 경찰관들 때문이라는 망상을 품고 있었고 경찰은 모두 직장 동료 및 선후배 사이로 ‘한통속’이므로 위와 같이 나에게 씌운 누명을 사후에도 합리화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나의 삶을 방해하여 내가 경제적 궁핍을 해결할 수 없게 내 주변 상황 등을 조종해 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등 망상장애 증세가 갈수록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더 나아가 성병대는 '자신의 삶을 방해해 온 경찰의 조직적인 활동의 최일선에는 경제적으로 몹시 빈곤한 나를 경멸하는 태도를 보여온 이씨가 위치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가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경찰 조직 및 경찰관들과 한통속인 일종의 ‘비밀경찰’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고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더욱 쌓여 증오심이 커졌다.
결국 성병대는 (본인이 선택한)경제적 빈곤을 견디다 못해 월세가 극히 저렴한 또 다른 곳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사를 앞두고 그간의 증오를 분출하면서 일단 이씨가 ‘비밀경찰’임을 확인해 보고자 2016년 10월 17일 그에게 ‘술을 한잔 하자’고 제의하였으나 이씨는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성병대는 이 일을 트리거로 삼았다.
성병대는 그간 쌓아 온 증오심을 극심한 분노로 폭발시켰다. 그는 마침내 이씨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이동 경로 등을 구상하고 도구 등을 준비하였으며, 이씨에 대한 범행을 마친 후 오패산 방향으로 도주할 때 자신을 추적해 오는 경찰관이 있으면 그 경찰관도 죽이기로 결심했다. '나를 억울하게 처벌받게 한 경찰관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술한 직접 제작한 사제 총을 이용하여 살인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2.2. 사건
성병대는 10월 19일 18시 20분 이씨가 운영하는 부동산 앞에서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뒤따라가 바로 옆에서 사제총 중에서 1정을 꺼내 5개의 총열에 각 3발씩 장착된 것으로 조준하여 발사하였으나 맞지 않았다. 총을 쏘는 것을 본 피해자가 도망가자 뒤따라가 소지하고 있던 쇠망치로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5회 때렸고 피해자가 두개골 함몰 골절로 기절하자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멈추었다. 이로 인해 다행히 살인은 미수에 그쳤다.
문제는 그곳이 불특정 다수의 통행인이 빈번한 도로였다는 것이다. 이씨를 향하여 사제총을 발사하는 과정에서 눈먼 총알 중 한발이 마침 건너편을 지나가던 무고한 사람인 또다른 이모씨(남, 71세)의 복부를 관통하고 만다(개복을 동반한 위장 관통상). 이 사람도 천만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성병대는 이씨를 가격한 후 도주하면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소지하고 있던 가위로 자신의 오른쪽 발목에 착용하고 있던 전자발찌를 끊어 훼손하였다.
곧바로 오패산 방향으로 약 50m 정도 도주한 성병대가 18시 30분경 오패산터널 옆 화단 풀숲에 이르렀을 무렵 ‘전자발찌가 훼손되었고, 총을 들고 있다’는 112 신고가 들어오자 이를 받은 경찰이 당연히 현장에 출동했다. 전자발찌를 끊어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본 시민이 신고한 것이다.
문제는 처음에 폭력 사건으로 신고되면서 경찰이 적절한 방어구 없이 출발했다는 것이다. 아마 성병대가 둔기를 휘두르던 시점에 이를 본 누군가가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여기서 총격으로 신고되었다면 경찰들이 방탄복을 착용하고 경찰 타격대를 출동시키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다.
신고를 받고 서울 강북경찰서 상황실에서는 코드 제로를 발령시켰다. 코드제로는 경찰의 신고 분류 코드 중 하나로, 관내 모든 순찰차가 응답해야 하는 신고. 코드제로를 발령시키고 6대의 순찰차를 출동시켰으나 신고가 폭력 사건으로 접수된 상황이기에 이 경찰들은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았으며 2016년 당시에는 순찰차에 방탄복을 배치하지 않았다. 애초에 순찰차에 방탄복과 방검복을 의무 배치하는 매뉴얼도 이 사건을 기점으로 생겼다.
어쨌든 이때 맨 처음 도착한 경찰차에 탄 사람들은 서울강북경찰서 번동파출소 소속 경찰관 두 사람이었다. 성병대는 자신을 체포하려 출동하였다는 이유로 조수석에서 먼저 하차한 번동파출소장 김창호 경위를 향해 약 5m 정도 거리에서 어깨 부위를 향하여 총을 쐈고, 불행히도 이것이 명중하며 김 경위는 즉사했다. 사인은 등 부위 맹관총창(盲管銃創, 관통하지 않고 몸안에 박혀 있는 상처)으로 인한 흉부장기(폐) 손상으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19시 30분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같이 출동한 경찰관 한 명은 순찰차 뒤로 엄폐하여 다행히 무사했다.
이후에도 경찰들에게 사제 총을 계속 발사하고 경찰도 발포를 시작하면서 공포탄 1발, 실탄 3발을 발사하여 이 중 2발을 맞혔으나 성병대의 방탄복을 뚫지 못했다. 약 10분 동안 대치하다 다른 경찰관 1명과 시민 4명에게 제압되어 체포되었다. 체포를 도운 시민들 중 2명은 동료와 술을 마시던 일용직 노동자들로 김모씨(56)는 총소리를 듣고 풀숲에 숨어 있던 범인에게 달려들어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 데 협조하였고 이 씨(33)는 총에 맞은 경찰을 발견하고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였다. 나머지 2명은 범행 현장 인근 상가 상인들이다. 그냥 달려든 것도 아니고 한 명은 뒤로 돌아서, 다른 두 명은 정면 풀숲에 숨어 일시에 범인에게 접근해 검거했다고 한다.
범인은 체포 당시 헬멧을 쓰고 방탄복을 입고있었는데 이 방탄복 덕에 경찰이 발포한 총탄을 복부에 맞았으나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그리고 17정에 달하는 사제 총기들과 칼 7자루, 사제 폭탄 1개를 가방에 소지하고 있었다.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나마 초동대응을 경찰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로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전자발찌 착용자 관리 부처인 보호관찰소 신속대응팀은 기껏해야 삼단봉 정도만 휴대하기 때문에 이쪽이 초동조치를 했다면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다수 가진 범인은 통제불능이었을 것이다.
3. 사용된 사제 총기
범인이 제작 및 소지하고 있었던 급조 총기.
이러한 급조 총기를 총 6정 정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범인이 사용한 급조 총기는 쇠구슬을 탄환으로 사용했다. 겉보기엔 중학생이 만든 것처럼 조잡해 보이지만 이걸로 발사된 총알이 급소에 맞으면 사람을 충분히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경찰이 같은 방식으로 만든 총기로 위력시험을 해보기도했다. 실제 사건에 쓰인 총기를 그대로 썼다가 혹시 증거가 파손되는 것을 우려해 경찰 측에서 유사한 것을 직접 만들었다. 사건 8일 후 경찰기동대 사격 훈련장에서 위력실험을 해 본 결과 맥주병을 두 동강 냈으며 인간의 근육과 비슷한 강도인 젤라틴 블럭을 34cm나 관통했다. 경찰이 쓰는 리볼버보다 약간 못한 수준이었다고.
사건 발생 직후에는 총기의 파이프 고정에 사용된 고무줄을 발사동력으로 착각해 슬링샷에 가깝게 보도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화약을 점화시켜 발사하는 원시적인 화승총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화약은 장난감 폭죽에서 빼내 사용한 것.
강북경찰서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파이프 하나당 쇠구슬 하나가 들어가며 파이프의 수만큼 발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총기마다 파이프가 여러 개 부착되어 있다.
4. 문제점
4.1. 화약관리 문제
위에서 확인되었지만 범인이 만든 총기는 매우 간단하고 허술해서 중학생만 돼도 충분히 만들 정도로 간단한 구조다. 진짜 문제는 화약으로 범인은 범행 당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총알을 십수 발이나 발사했고, 실제 쓰이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잡고 보니 사제 폭탄까지 만들어 지니고 있을 정도로 화약을 대량으로 구해 사용했다. 조사 결과 범인이 사용한 화약은 장난감 폭죽에서 추출하였다고 한다. 물론 폭죽의 화약을 빼내어 다른 용도로 가공하면 안 된다고 보관 용기 후면이나 설명서에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범죄 의도를 갖고 작정한다면 무용지물이다.
폭죽에서 흑색화약을 추출해 악용하는 범죄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범죄이고, 전세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예방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유일한 예방법이라면 폭죽 제조와 유통을 아예 민간에 불허하는 것인데, 이게 불가능하다는 건 현실에서 폭죽을 불법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죽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끄는 데다 축제나 명절에 터트리는 기쁘고 즐거운 것이므로 이미지마저 좋다.
4.2. 쉬운 전자발찌 제거
성병대가 범행 직후 도주하면서 오른쪽 발목에 착용한 전자발찌를 가위로 끊어 훼손했는데 전자발찌가 가위에 쉽게 제거되어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논란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24시간 옆에서 감시자가 상주하면서 발찌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안 끊어질 수는 없다. 꿈의 소재라는 케블라, 다이니마 등도 칼에 절단되며 철로 제작한다고 해도 구부릴 수 있어야 하는 전자발찌 특성상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그나마 생각해 볼 만한 대안이라고 한다면 자전거 자물쇠나 수갑처럼 통짜로 제작하는 것 정도가 있을 수 있지만 쇠톱을 쓴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예 영화에나 나오는 생체 칩을 강제로 이식하면 모르겠으나 이것마저도 피부를 찢고 꺼낸다면 소용 없다. 여러 첩보 영화혹은 괴수영화에서 등장인물이 피부 내에 이식된 위치 추적기나 아이디 칩을 제거하기 위해 등장하는 단골 장면이기도 하다. 거기까지 할까 싶기도 하지만 사악한 의도를 가진 작자들은 하고도 남는다.
사실 전자발찌를 다른 범죄자들이 안 제거하는 것은 제거 방법이 너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제거하는 순간 바로 경찰에 통보되기 때문이다. 즉, 제거하는 순간 전국에 수배가 내리고 감방에 다시 끌려갈 수 있기에 제거를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절대 뗄 수 없는 수준으로 전자발찌를 채워 놓는다면 뼈나 대혈관이나 내장에 칩을 묶어놔야(...) 제거하지 못할 텐데(실제로 생체 칩 이식은 가능하다) 이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문제. 이러면 기간이 끝나더라도 감시자 쪽에서도 제거하지 못해 전자발찌 착용 기간과는 관련 없이 무조건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오히려 쉽게 뗄 수 있는 전자발찌를 굳이 다소곳하게 차고 조용히 생활하고 있는 것은 경찰의 법 질서에 순응한다는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전자발찌가 상대를 믿고 내보내는 것이니만큼 과연 사회에서 법 질서에 순응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자발찌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음에도 잘 차고 다니며 경찰에 잘 협조를 하고 있다면 그는 사회 복귀를 잘 하고 있다는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전자발찌를 불법으로 끊는 순간 이 사람은 못 믿을 사람이고 사회에 내보내면 안 될 사람이라는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다.
4.3. 경찰 방탄복 구비 미비
화성시 총기 난사 사건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 당시에도 경찰은 방탄복 대신 방검복 조끼만 입은 채로 범인과 대치하다가 사상자가 발생했다. 관련 기사. 다만 이 사건은 신고 당시에 폭력 사건으로 신고를 받고 출동해 신고가 급하게 접수된 나머지 방검복 조끼만 입은 채로 출동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일반인의 총기 소지가 대단히 드물고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단순 폭력 사건에 범인이 총을 갖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인이 보유할 수 있는 총은 오직 수렵, 스포츠 사격을 목적으로 한 산탄총, 공기총뿐이다. 그것도 평소에 개인이 자기 집에 가지고 있을 수 있었으나 이 사건과 파출소 총기 난사 사건까지 겹쳐서 이후에는 허가와 등록을 받아 경찰서에 영치하다가 사격할 사유가 생겼을 경우에만(사격장에 가고 싶을 때나 수렵할 유해조수가 포착됐을 때) 잠시 불출할 수 있을 뿐이다. 안 그러면 불법이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나마 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매우 소수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은 경량화된 신형 방탄복을 개발하고 방검복과 함께 순찰차에 각각 2벌씩 배치하는 메뉴얼을 만들었다.
4.4. 비현실적인 경찰의 총기 사용 규정
순직한 김 경감은 총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범인이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지만 바로 총을 발사했으면 사망은 면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규정상 '투항하라'는 말을 세 번 해야 했다. 미국 경찰들이 흔히 소리치는 Drop the gun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미국은 경찰이 위협을 받는 경우 몇 발을 쏘든 투항명령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고, 결국 규정을 지키다 김 경감이 살해당했다.
성병대가 투항하지 않자 경찰은 방아쇠 뒤에 안전장치를 제거한 후 발포했지만 첫 발은 공포탄도 아닌 공실이었기에 장전에 시간이 걸렸다. 두번째는 공포탄이었다. 결국 범인이 10발을 쏠 동안 경찰 측은 공포탄을 포함하여 총 4발밖에 발사를 못 했다. 사실상 규정을 다 지키면 경찰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경찰의 총기 사용 규정이 조금만 자유로웠다면 김 경감의 희생은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중의 여론 대부분은 여전히 총기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고 더 나아갈 경우 경찰관의 총기 사용을 극도로 무서워하여 부정적으로 여기게 될 수 있기에, 지속적으로 메뉴얼을 개정하여도 경찰은 자유롭게 총기 사용을 하기 어렵다. 경찰의 적극적인 총기 사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키운 예로 서울시 강동구 암사역 흉기난동 사건에서의 경찰의 대처가 있다. 테이저건, 삼단봉 사용도 미숙했으며 시민 대피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기에 총기를 사용했더라면 유탄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4.5. 허술한 우범자중점관리 대상 관리
범인 성병대는 경찰 우범자 관리 제도상 가장 낮은 첩보수집 수준인 자료보관 대상자로 드러났다. 애초에 성병대는 첩보수집 2단계인 첩보수집 대상자였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은 전자발찌 착용자란 이유로 등급 조정을 한 것이다. 관련 기사. 2단계의 경우 3개월에 1회 이상 범죄 관련 자료를 수집하긴 하나 전자발찌 착용자이기에 이미 위치가 실시간으로 드러난다는 점, 법무부에서 주 1회 접촉 관리를 한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단순히 업무를 방기했다고 보긴 어렵다.
우범자 첩보수집 등에 관한 규칙 (위로 올라갈수록 첩보수집 강도가 높아짐)
△ 1단계 : 중점관리 대상자
△ 2단계 : 첩보수집 대상자
△ 3단계 : 자료보관 대상자
5. 재판
5.1. 1심
(전략)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또한 피고인은 (중략)경찰관들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며 사제 총기 사용으로 일반인에게 극도의 불안을 야기하고 사회질서를 혼란시켰다.
인간의 생명은 우리 사회의 법이 수호하는 최고의 법익이자 가장 존엄한 가치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이다. 피고인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실행하였고, 피고인의 엽기적인 범행으로 인하여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던 경찰관이 극심한 고통 속에 고귀한 생명을 잃었으며, 피고인에 대하여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하지 아니한 피해자 2명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졌었다. 피고인의 이와 같은 살인 범행은 그 동기에 참작할 아무런 사정이 없고, 극단적인 생명 경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피해자 C의 유족, 피해자 A, B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입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범행을 반성하는 어떠한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으로 일관하면서 모든 책임을 경찰관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피고인이 범행 전후 및 이 법정에서 보인 태도에 비추어 보면, 향후 동일한 유형의 범행이 반복될 위험성 또한 매우 높다.
판결문 중에서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으며 2017년 4월 27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성병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배심원들은 모두 유죄라는 데 의견이 만장일치했고, 4명은 사형, 5명은 무기징역 의견을 냈다. 판결문
변호인(국선)은 피해자가 다른 사람, 그러니까 성병대가 아니라 그를 잡기 위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쏜 총에 잘못 맞아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2. 2심
이후 검찰과 피고인이 쌍방 항소하였고 이 와중에 성병대는 재판장 교체를 요구하며 4번이나 기피신청을 했다.
2018년 8월 16일 항소심에서도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판결문
5.3. 대법원
2019년 1월 8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