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6일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하지혜 양이 중견기업 회장의 부인의 지시를 받은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발생 직후에는 보통의 살인 범죄로 여겨졌으나 시간이 흐른 후 범인이 돈과 권력으로 법망을 빠져나가 잘 먹고 잘 산다는 사실과 일부 사법부와 의료계 종사자, 상류층 인사들의 비도덕적 행각이 폭로되어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온 사건이다.
법대생이자 사법시험 수험생이던 하지혜(당시 만 21세) 양은 생전에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인 윤길자(당시 58세, 1944년생)로부터 오랜 기간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윤길자는 하 양의 이종사촌 오빠인 김현철 판사의 장모였다. 윤길자가 먼 사돈처녀를 의심했던 것은 윤길자가 1999년에 사위의 여성관계에 대한 괴전화를 받은 것과 관계가 있다. 하필 김현철은 결혼 전에 사귀던 여성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장모가 그것을 의심하자 사법고시 수험생이기도 한 사촌 여동생 하 양이 자신에게 법 관련 질문을 자주 한다고 둘러댔고 이에 윤길자가 하 양을 사위의 불륜 상대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 망상장애와 기타 정신병 때문에 의심이 많던 윤길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엽기적 행동들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사위를 감시하기 위해 딸 내외의 방에 도청 장치를 심고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하 양의 미행을 지시했다.
여기에 동원된 이들만 무려 25명에 이른다. 현직 경찰과 흥신소 직원 등이 동원되어 이중삼중의 미행망을 구축하고 운전기사로 일하던 친정조카 윤남신(당시 42세)에게 관리를 맡기고 종종 찾아가 상황을 살폈으며 윤길자 본인도 동네 아줌마처럼 변장하여 마을을 돌아다니는 등 직접 감시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하 양의 자택 전화부터 하 양 친구들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전화하고 '하 양과 김 판사가 같은 건물로 들어가는 사진'에 3억 원의 현상금을 거는 등 하 양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감시했다.
그러나 애당초 하 양과 사위 사이엔 이종사촌이라는 혈연 외엔 불륜을 의심할만한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하 양의 동선을 보더라도 의심을 품을 만한 정황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하 양은 매일 집-학교-도서관만 다니며 공부만 했기 때문이다. 윤길자의 명령을 받고 하 양을 미행했던 미행인들 모두 하 양은 불륜과 무관하다고 결론지었으며 그중에는 이제 그만두자고 윤길자를 설득한 사람까지 있었으나 윤길자는 도서관 지하에 비밀 출입구가 있는데 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하지 않느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에 누군가는 이 일은 사위와 하 양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난다고 예측했는데 비극적이게도 이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장장 2년에 걸친 미행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윤길자는 2001년에 하 양의 집에 딸 단속을 잘 하라며 전화를 했다. 이 일로 하 양 일가는 윤길자가 미행의 배후임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대립했다. 문제는 이때 윤길자의 사위 김현철이 누가 뭐라 하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사위의 침묵을 사실 인정으로 받아들인 윤길자는 하 양이 사위의 불륜 상대임을 확신했고 되레 하 양의 가족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하 양 일가는 2001년 윤길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여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승소하여 윤길자와 그 미행인들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얻어냈다.
하 양과의 소송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윤길자는 눈이 뒤집혀 자신의 친정조카인 윤남신에게 살인을 청부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곤궁했던 윤남신은 돈이 탐났지만 혼자서 일을 벌이기엔 겁이 나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구인 사채업자 김용기를 끌어들였는데 둘은 범행의 대가로 1억 7,50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선수금으로 받은 5,000만 원으로 하 양을 살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살을 시도했는데 미리 동물실험까지 하면서 여러 준비를 했으나 그러는 사이에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 원천봉쇄됐다. 이에 윤길자는 하 양의 부친을 목표로 삼았다. 윤남신과 김용기는 3번의 기회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때 이들을 수상하게 생각한 하 양의 부친은 김용기의 명함을 보관해 두었는데 이는 수사의 출발지가 되었다. 윤길자가 3번째로 지시한 영남제분 임원의 살해까지 실패한 후 목표를 다시 하 양으로 변경했다.
납치자는 한 달간의 미행을 통해 하 양의 동선을 따라가 2002년 3월 6일 오전 5시 반쯤 길거리에서 하 양을 납치했는데 하 양은 수영장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상태였다. 납치자들은 하 양을 차에 태워 구타하고 청테이프로 입을 막았으며 윤남신과 김용기가 하 양을 넘겨받고 미리 준비한 공기총으로 얼굴과 머리에 총 여섯 발을 쏴서 살해한 후 하 양의 시신을 쌀 포대에 넣고 위에 흙을 덮어 위장한 뒤 산을 내려와 공중전화로 윤길자에게 범행 성공을 보고했다. 둘 다 이런 수준의 중범죄를 저질러 본 적이 없어 범행 당시 허둥댔다고 한다.
윤길자는 범행 성공을 보고받고 나서 며칠을 지켜본 후 범행 성공을 확신하게 되자 잔금을 지불하고 그들을 출국시킨 후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중국을 통해 월북하라고 지시했고 김용기의 성형수술 비용을 대 줬다.
여기서 더 끔찍한 건 여전히 하 양이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남신과 김용기는 수사기관에서 “납치한 후 곧바로 검단산으로 데려가 쌀포대로 씌워진 하씨를 땅바닥에 내려놔 눕히고 주위에 있는 낙엽으로 덮은 후 곧바로 김용기가 윤남기에게 넘겨받은 공기총으로 하씨 머리를 겨냥해 6발을 발사해 살해했다”고 진술했으며 “하씨가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고도 했지만 부검 결과 피해자의 사망 시각은 ‘사체가 발견된 16일로부터 이틀 이내’였다. 하씨의 시신 곳곳엔 골절과 자상 흔적 등 가혹행위를 당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흔적들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윤남신과 김용기의 진술과는 맞지 않았으며 쌀포대를 씌워놓고 총을 발사했다는 진술과 달리 포대엔 총알 흔적이 없었다.
결국 법원도 윤남신과 김용기가 하 씨를 6일 검단산에서 살해한 것이 아니라 일단 하씨를 미상의 장소에 수시간 내지 수일간 감금했다가 살해 후 사체를 검단산에 유기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범인들의 진술이 객관적인 증거와 일부 배치되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진술이 하씨를 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음에도 이를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범행 시간도 ‘3월 6일 오전 6시 10분부터 (시신이 발견된) 16일 오후 9시 사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하 양이 돌아오지 않자 큰 근심에 빠졌는데 하 양은 실종 당시 성실하게 수험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자의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술한 윤길자와의 악연으로 인해 가족의 걱정은 더욱 컸다. 결국 하 양의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3월 9일에 딸이 납치되는 장면이 촬영된 CCTV 영상을 확보하여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지만 하 양은 수사 시작 1주일 만인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초기의 언론과 여론은 하 양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추정했지만 하 양의 부친이 생전 하 양에게 있었던 범죄 피해 상황, 그리고 자신이 접촉했던 수상한 인물에 대한 사항을 진술함에 따라 경찰은 원한 관계에 따른 살인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범인과 윤길자와의 접점이 발견된 것은 사건 발생 1개월 후였다. 하 양의 부친이 수상한 인물로 지목한 김용기가 윤길자의 조카 윤남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구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의 행적을 조사하자 공기총 등의 여러 범죄 도구를 구입한 흔적과 윤남신과 함께 윤길자에게 거액을 받은 것이 확인되었고 사실상 모든 증거를 확보했다. 경찰은 이때 청부살인 배후가 윤길자임을 확신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윤길자를 입건하기는 했지만 실행범인 윤남신과 김용기가 각각 베트남과 홍콩으로 도주한 상태였기 때문에 윤길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윤길자는 천연덕스럽게 윤남신의 잘못을 명백히 밝혀 달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 양의 부친은 직접 베트남으로 출국해 현지 경찰과 교민사회, 인터폴과의 공조 요청, 사비(私費)로 현상금을 걸고 추적하는 등 수사를 위해 사력을 다한 끝에 중국에서 제보 전화를 받아냈는데 이를 토대로 중국에 정보를 제공해 중국 경찰이 윤남신과 김용기를 체포하여 대한민국으로 압송했다. 이때도 윤길자는 '잘못을 저지른' 조카를 꾸짖는 태도를 취했지만 윤남신과 김용기가 사건의 전말을 자백함에 따라 윤길자에 대한 사법 처리가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윤길자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전화 인터뷰를 시도한 PD를 오히려 타일렀고 체포 뒤에도 경찰에게 '내 남편은 대단한 사람이다. 출소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했다.
우선 납치범들은 징역 3년에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미행자들도 가담 정도에 따라 형량은 달랐지만 모두 법의 철퇴를 맞았다.
살인범들에 대한 재판은 2003년 11월 처음 열렸다. 검찰은 모두 사형을 구형했으나 1심에선 윤길자에겐 무기징역, 윤남신과 김용기에겐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항소심의 재판장 신영철 판사(이후 대법관 역임)는 윤남신과 김용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윤길자의 항소는 기각했다. 당시 피고인의 변호인 엄상익 변호사에 따르면 판사는 이 범행이 계획살인인 데다 피해자를 잔혹하게 구타하는 등 수법이 잔인하여 실행범들의 죄질이 교사범의 것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평했다. 이후 윤남신은 우발적 살인으로 진술을 바꿔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죄질이 워낙 나빠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상의 과정은 윤남신의 변호인인 엄상익 변호사가 정리하여 블로그에 남겼다. 변호사는 이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뒤 영남제분 측의 항의로 인해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이렇게 사건이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였으나 윤남신이 진술을 바꿨던 것이 뜻밖에도 추가적인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는데 수감 중이던 윤길자가 2008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재판 당시 윤남신의 진술 번복을 토대로 윤남신과 김용기를 위증죄로 고소했다. 이미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윤남신과 김용기는 위증죄가 추가돼도 달라질 게 없지만 윤남신과 김용기가 위증했던 것으로 인정받게 되면 윤길자는 살인교사죄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검찰 입장에서는 검찰이 윤남신의 위증죄가 무죄임을 증명하는 변호사 역할을 맡는 괴상한 상황에 놓였다. 어찌 됐건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윤남신과 김용기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
2004년 무기징역 선고 후 남편이었던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은 윤길자와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길자가 이렇게 강박적인 의심을 한 것은 과거 이 사람이 잦은 불륜을 한 탓도 있다지만 남편이 진 책임이라고는 바로 이혼이 전부였다. 하지만 2013년 6월 29일자 그것이 알고싶다(900)를 보면 이혼은 했지만 연을 끊지는 않은 듯하다. 되려 남편이 형집행정지를 쉽게 받은 게 아니라며 옹호한 걸 보면 법적 책임은 없지만 아예 책임이 없을지는 의문이다. 네티즌들의 추측처럼 위장이혼이 아닌가 의심할 여지는 충분하다.
김 판사는 법조계 내에서 도의적 차원에서 사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몰염치하게도 10년 동안 아무 말 없이 버텼다. 당연히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목포, 울산, 여주 등 지방의 지원급 재판부나 전전하는 등 좋지 못한 커리어를 보내다가 적격심사대상자로 통보받자 2012년 2월 6일에야 사직하고() 모 로펌에 취직했으며 그것이 알고 싶다(900)에 출연해서 윤길자를 옹호하는 투의 발언을 했다.
2014년 2월 7일, 류원기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허위진단서를 쓴 세브란스병원 교수 박병우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는 1심 판결이 있었다. 판결문 전문
2014년 6월, 회삿돈 15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영남제분 회장이 보석으로 석방됐다. 다른 한편 2014년 2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1심에서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에게 징역 2년, 주치의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형량이 류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주치의는 벌금 5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2013고합269, 기사) 재판부는 법은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돼 있다며 윤길자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류 회장을 무겁게 처벌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014년 10월 30일, 항소심에서 류원기의 징역 2년을 유지하면서 박병우는 벌금 500만 원으로 감형되었다.(2014노616)
2015년 4월 16일, 영남제분은 한탑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News1 기사 지금도 류원기 회장의 직계존속으로 보이는 류지훈(외 3인)이 한탑 지분의 32.71%를 보유하고 있다.
2017년 11월 9일,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로 항소심이 확정되었다. 판결문 류원기와 윤길자에게 허위진단서를 쓴 현직 세브란스병원 교수 박병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2심의 판결대로 류원기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박병우에게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