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12일에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 의붓딸을 상습 성추행하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김중호(당시 44세)가 집으로 찾아가 아내와 의붓딸, 다른 두 자녀를 망치와 소형 절단기, 가위 등으로 살해한 사건으로, 김중호는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다.
2001년 12월 13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 3파출소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집주인 김중호 씨가 입원 수술을 받기 위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가족과 연락이 안 되니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경찰들이 김중호가 거주하던 잠실주공4단지로 간 것은 오전 9시 15분쯤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고 문도 안 열리자 119 구조대에 요청해 베란다 창문을 통해 집안에 들어가 보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김중호의 아내와 두 딸, 아들이 각각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작은딸(11)과 아들(9)은 안방의 침대에서, 부인 이모씨(43)는 부엌에서, 큰딸(17)은 작은방에 쓰러져 있었다. 특히 부인과 큰딸은 머리가 함몰되어 뇌수가 흘러내린 참혹한 상태였다.
작은딸과 아들도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피를 흘려 사망했으며, 시신들은 목과 가슴 등에도 흉기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서 "12일 새벽에 시끄럽게 떠들면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김중호의 자녀가 12일 하루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이날 오전 2~3시에 김중호의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는 주민 진술 등으로 미뤄, 범행은 12일 새벽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건 당시 집에 없었던 아버지 김중호는 1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를 돌아다니다가 칼로 팔과 배 등을 그어 자해했기 때문에 병원에 실려왔다. 김중호는 병원에서 "내가 가족을 죽였다"고 일체 자백했다.
김중호는 부인이 아이들만 데리고 따로 살겠다면서 계속 이혼을 요구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아내가 계속 바람 피우고, 자식까지도 아빠를 왕따시키고 싫어하면서 저희들만 살겠다고 하니 갈 곳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자식을 죽이겠습니까"라며 범행을 합리화하려고 애썼다.
1989년 9월 개인택시를 몰던 김중호는 지인의 소개로 이씨를 만나 결혼했는데, 그의 집안에선 애 딸린 이씨와 결혼하는 걸 반대했지만 그것을 무릅쓰고 결혼했다. 아내 이씨는 전남편 소생인 큰딸(당시 5세)을 데리고 재혼했고, 1990년과 1992년에 두 사람 사이에서 딸과 아들이 각각 태어났다.
하지만 김중호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란주점 등에서 주방일을 하던 아내의 귀가가 늦을 때마다 “바람을 피우는 것 아니냐”며 때리는 등 폭행이 잦았다.
1995년부터 부인에게 쌓인 불만을 애꿏은 의붓딸인 큰딸에게 화풀이하듯이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김중호는 큰딸이 자던 방에 몰래 들어가 "다 컸다"며 몸을 만지는 일이 잦았으며, 1999년부터는 친딸(작은딸)도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부인 이씨는 폭행과 딸들의 성추행 문제로 2001년 9월에 남편을 고소했고, 김중호는 9월 22일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및 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11월 30일 구치소를 나왔다. 경찰들에게 진술할 땐 "딸들을 성추행한 적이 없으며 바람을 피던 아내가 나를 무고해 구속됐었다"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열흘 뒤인 12월 12일 밤 11시 김중호는 출소 후 처음으로 이혼을 생각하던 아내를 대면했다. 이혼만은 막아야 했는데 김의 유일한 전재산인 택시를 가압류했기 때문에 이혼은 개인 파산이었다.
그렇게 빌기도 하다가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잠에서 깬 의붓딸도 "엄마 때리지 말라"며 김중호를 집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김중호는 안방 침대 밑에 있던 공구함으로 달려가 쇠망치를 꺼내와 부인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는데, 이미 쓰러졌지만 화가 풀리지 않는지 이마, 정수리 할 것 없이 10번이나 내리쳤다.
의붓딸은 김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아 대롱대롱 매달리며 말리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김중호의 분노를 자극해 더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얼굴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때렸는지 발견 당시 너무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부인과 의붓딸을 살해한 김중호는 초등학교 5학년 작은딸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자고 있던 안방으로 향했다. 자살을 결심한 상태인 김중호는 남은 두 아이들이 고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살해를 마음먹었다.
김중호는 작은딸에게 망치를 휘둘렀지만 어찌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망치의 나무자루가 부러지고 말았고,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소형절단기와 가위를 이용해 작은딸을 살해하고 아들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서둘러 집을 나온 김중호는 택시를 타고 분당을 돌아다니다가 소형 절단기로 자해했다.
김중호는 2002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아 현재까지 22년째 복역 중이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진 않다고 봤지만 범행 동기나 수법 등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