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9일 밤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시네시티 극장 앞 노상에서 일어난 흉기 살인 사건.
2008년 9월 9일 밤 11시 30분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시네시티 극장 바로 앞 인도에서 해남십계파 조폭 두목 박사문(당시 38세)과 나이트클럽 사장 김모(당시 40세)씨는 서로 다투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김씨가 박사문의 얼굴을 때렸고 김씨의 손찌검을 맞아 바닥에 엎어진 박사문은 입고 있던 옷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접이식 칼(소위 발리송 나이프)을 집어들고 김씨의 명치와 어깨를 1회씩 찔렀는데 심장이 얕게 찔린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피습을 당한 지 약 1시간 30분 뒤인 10일 새벽 1시경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해남십계파 두목이었던 박사문이 또 다른 조폭 OB파 출신인 김씨와 한 코스닥 기업에 거액을 공동으로 투자한 뒤 증시 침체로 인한 주가 하락이 발생하여 서로 사이가 나빠진 것이었다.
사건 초반에 경찰은 서로 금전 문제로 다투던 중에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짐작했으나 두 명이 서로 다른 조직의 조폭이며 피해자인 김씨가 대형 나이트 클럽의 사장인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조폭들 사이의 이권 다툼일 가능성도 고려해 이를 우려하여 김씨가 안치된 병원 영안실에 경찰을 배치했다.
경찰은 목격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박사문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주소지인 강남구 역삼동과 박사문의 고향이 있는 전라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수사를 벌였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피해자가 박사문 측에게 기업 인수에서 손을 떼라고 하였는데 박사문이 이를 거절하여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박사문에 대한 공개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했지만 검거에 실패해 2009년 하반기부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박사문을 올리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 2개월 동안 박사문을 잡지 못했다.
박사문은 결국 2012년 11월 5일에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의 유료 주차장에서 해남경찰서 수사과 김성혁 경사(당시 41세)에 의해 검거되었다. 검거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1년 서울강남경찰서와 서울특별시경찰청의 추적을 피해 잠적한 박사문이 고향인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는데 이때 박사문은 도피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해남과 광주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던 상황이었다. 박사문은 검은 유리로 된 자동차만 타고 다니며 걸어서는 절대 이동하지 않았다.
첩보가 입수된지 얼마 안 된 2012년 1월 3일 밤 11시 45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에 박사문이 있다"는 신고를 받은 서울서초경찰서는 익일 새벽에 박사문을 단번에 잡기 위해 강력팀을 출동시켰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아파트 안에 박사문은 없었고 바카라 도박판이 차려져 있었는데 이때 그 곳에서 돈을 걸고 도박하던 주축인 한씨(당시 44세), 함께 도박을 했던 이씨(당시 35세)를 비롯한 35명이 줄줄이 체포되었으며 이 역시 허위신고일 가능성이 있었다.
때마침 해남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 중이던 김성혁 경사는 서울강남경찰서와 공조해 박사문을 집중적으로 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2년 7월 30일 박사문을 포착했다.
이때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포함한 모든 조직원을 미행해 과학수사팀 직원과 함께 해남에 있는 한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나오는 박사문을 포함한 조직원, 부두목, 부두목의 BMW 자동차를 차례차례 카메라로 찍었다. 김성혁 경사가 정보원을 통해 박사문이 도피 과정에서 성형수술을 했음과 그쪽에서 걸어나오는 사람 중 한 명이 수배 당시 사진의 인물과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이후 김성혁 경사는 자리를 옮겨 부두목이 살던 광주광역시 수완지구와 박사문의 지인이 장사를 하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일대를 오가면서 박사문이 나타나는 즉시 잡기 위해 잠복하였는데 거듭된 잠복에 김성혁 경사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 틈틈이 있을 정도였다. 검거 당일인 2012년 11월 5일 오후에도 충장로, 금남로, 대인동 일대에서 잠복하던 중에 대인동의 한 유료 주차장에서 부두목의 BMW 자동차를 발견한 바 있다.
마침내 11월 5일 김성혁 경사가 잠복한 지 2시간 만인 오후 4시 50분에 박사문은 대인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광주점 앞 노상에서 부두목의 BMW 자동차 옆에 주차된 현대 쏘나타 자동차에 타려고 했다가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형사 4명에 의해 결국 체포되었다. 이때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이 도망갈 것을 우려하고 공포탄 두 발을 쐈다.
박사문은 도피하던 4년 동안 몸무게를 100kg에서 20kg가량 감량한 데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쌍꺼풀과 보톡스 수술을 받아 수배 전단에 실린 사진과는 모습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페이스오프 살인범" 이라는 말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도피 기간 중 얼마간은 서울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성형 사실을 부인했다가 쌍꺼풀 수술을 했음을 시인했고 이때 박사문이 타려고 했던 현대 쏘나타 차량의 트렁크가 열리자 등산 장비, 운동화, 텐트, 낚싯대, 등산모 등이 실려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박사문의 은신생활상이 짐작되었다.
박사문은 자신의 사건에 대한 관할 기관인 강남경찰서에 인계되기 전에 "내가 죽였던 김씨 측과 합의하지 못해 아쉽다", "내 운명이다. 이렇게 잡힐 줄 알았다."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며 순순히 연행에 응했다.
경찰은 살인죄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경찰과 달리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보고 상해치사죄로 그를 구속 기소했다.
2013년 5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박사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고 2015년 11월 4일에 만기출소했다.
재판 당시 박사문은 2억원을 주고 유족들과 합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