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9일 충청남도 부여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70대 노파가 사위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 사건 현장에서 물증이 나왔지만, 사건의 해결에 도움이 되긴커녕 사건을 총체적으로 꼬이게 만든 함정이 되어 버린 사건이다.
부여에 살던 70대 노파 윤씨(가명)는 마침 읍내에서 집으로 찾아온 막내아들과 삼계탕을 함께 먹었다. 아들은 삼계탕을 먹은 후 곧장 집을 떠났는데, 다음날 다시 찾아온 집의 광경은 이상했다. 닫혀 있어야 할 현관문과 안방문이 반쯤 열려 있고, 집에 불은 완전히 꺼진 상태였다. 불을 켜자마자, 아들의 얼굴과 마주한건 어머니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시신의 상태는 참혹했는데, 범인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입은 찢어진 상태였고, 치아는 4개나 빠졌으며, 목을 발로 짓이겨 새파랗게 멍든 상태였다. 국과수에 의해 밝혀진 사인은 비구폐색 및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수사 초기 경찰은 범행시간을 밤 10시~11시 사이로 추정했다.
방은 마치 도둑이 뒤진 것처럼 물건들을 헤집어 쏟아 놓은 상태였지만, 사라진 귀중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도에 의한 살인으로 위장한 전형적인 현장 위장 트릭이었다. 현장에서 범인이 남긴 특별한 족적이나 지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나, 몇 가지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여러 개의 머리카락 뭉치와 피우다 만 담배꽁초 2개비였다. 담배꽁초는 피우다 말고 방바닥에 옆으로 짓눌러 끈 상태였는데, 이 담배꽁초의 흔적을 보고 주변 마을 사람들과 유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를 지목했는데, 바로 살해당한 윤 할머니의 사위였다. 사위 강씨(가명)는 평소에도 담배를 끌 때 꽁초 끄트머리를 방바닥에 짓눌러 끄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를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강씨밖에 없었다. 남편 강씨의 상습적인 폭력과 학대를 견디다 못한 윤 할머니의 딸은 강씨에게서 도망쳐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인 상태였고, 이후 강씨는 장모 집으로 찾아와 딸을 내놓으라며 온갖 협박과 폭력, 기물 파손을 일삼았다. 집의 대문을 부수고 장모에게 협박 전화까지 한 상황에서 며칠이 안 지나 윤 할머니는 살해되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머리카락 뭉치는 할머니의 것이었고, 단 2가닥의 머리카락만 타인의 것이었다. 머리카락과 담배꽁초의 타액까지 발견되었으니, 이제 범인인 사위를 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DNA 분석 결과 머리카락과 담배꽁초에서 나온 DNA는 전혀 새로운 제3자의 DNA였기 때문이다. DNA의 주인공은 경기도 안산시와 수원시를 떠돌던 노숙자 황씨(가명)였다. 황씨는 용의자로 체포됐으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범행을 전면 부인했는데, 자신은 부여에 찾아온 적도 없고 범행 장소도 처음 와 보는 곳이며, 사건의 피해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신 황씨는 노숙 생활을 하던 본인에게 한 백발의 남성이 찾아 와서 술과 담배를 사주고 머리카락을 뽑아간 사실을 이야기했다. 거짓말탐지기 판독 결과, 황씨의 진술은 진실로 나왔고, 이외에 특별한 혐의점이 없어 황씨는 풀려났다.
황씨의 진술은 2008년 안산의 한 거리에서 담배를 구걸하던 그에게 생판 모르는 한 백발의 남성이 선뜻 담배를 내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술과 음식까지 사줬다는 것이다. 둘은 한 식당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황씨에게 제육볶음과 소주를 사주었는데, 이때 그 남성이 황씨의 머리에서 새치를 뽑아준다고 하고 머리카락을 뽑아갔다고 한다. 음식을 다 먹은 황씨는 담배를 추가로 더 사주겠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 먼저 식당 밖으로 나가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남자가 오지 않자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자신이 핀 담배 꽁초 2개피와 함께 남자는 사라졌다고 한다. 나중에 황씨는 그 담배를 기억해냈는데,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와 똑같은 제품이었다.
황씨의 주장에 따르면, 목격자가 2명이나 더 있었는데, 바로 그 식당의 사장과 사장의 아들이었다. 사장은 노숙자와 백발의 남성이 음식을 먹은 사실과 앉았던 자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2명이 먹은 음식이 제육볶음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사장의 아들은 백발의 남성이 노숙자에게 담배를 사주겠다는 대화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에 체포되었던 황씨는 자신에게 음식을 사준 남성이 누구냐는 질문에 한 남성을 지목하는데, 그 남성이 바로 윤 할머니의 사위 강씨였다. 여기까지만 봐도 강씨가 노숙자에게 선심을 쓰는척하며 담배꽁초와 머리카락을 수집해 갔고, 이것을 이용해 범행 현장을 위장하고 엉뚱한 제3자를 범인으로 만들어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고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경찰은 강씨를 데려와 황씨와 대질심문을 했지만, 강씨는 황씨가 누군지도 모르며, 황씨와 음식을 먹은 사실까지 완전히 부인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황씨의 진술은 진실로 나왔고, 강씨의 진술은 거짓으로 나왔다.
황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었는데, 바로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의 상태였다. 현장에서 직접 담배를 피워 방바닥에 불을 껐다면 방바닥엔 회색 재가 많이 남기 마련이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 꽁초는 회색 재는 거의 없고 검은 재가 많이 남았으며, 방바닥 주변이 검게 그을려 탄 상태였다. 이는 이미 피운 담배를 현장에서 다시 불을 붙여 눌러 껐을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도 DNA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원래 실수로 빠진 머리카락은 DNA가 검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할머니가 범인의 머리를 뽑았을 가능성도 낮은데, 시신의 상태는 범인이 할머니로 하여금 반항할 틈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심한 폭행을 행사했음을 암시했다. 즉, 이미 계획적으로 살인을 작정한 범인이 빠른 시간내에 무자비한 폭행으로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아, 반항할 시간적, 물리적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던져 놓은 머리카락이 발견될 수 있도록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뭉치째 뽑아 놓아 경찰의 시선을 끄는 치밀함까지 선보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지문과 족적 하나 남기지 않고 현장도 위장했을 만큼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자신의 DNA가 담겨 있는 머리카락과 담배꽁초를 대놓고 전시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편, 사위 강씨는 윤씨가 살해되던 시간에 자신은 알리바이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건이 발생한 2008년 10월 9일 자신은 안산에서 오후 4시부터 친구와 술을 마셨고, 만취해 오후 6시에 집(원룸)에 들어가 잤으며, 다음날 새벽 5시에 잠을 깨 다시 친구와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씨와 술을 마신 친구에게 물어본 결과, 당일 강씨와 술을 마신 것은 맞지만, 당시 마신 술은 평소 주량에 반도 못 미치는 소주 1병이었으며, 강씨는 곧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 간다."며 술자리를 떴다고 답했다. 게다가 10월 9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강씨의 휴대폰은 꺼진 상태여서 위치 추적도 불가능해졌다. 안산에서 부여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이므로, 그 시간에 살인을 하고 다시 안산으로 복귀하기에는 차고도 남을 시간이다.
전술했듯이, 강씨의 아내는 남편의 폭력과 욕설을 못 견디고, 2008년 8월 강씨에게서 도망쳐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이던 상태였다. 이후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2달 동안 강씨는 상습적으로 장모의 집에 찾아와 문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온갖 협박과 행패를 부렸다. 강씨의 협박 내용은 실로 섬뜩했는데, "아내를 목졸라 죽이고 토막을 내어 찜통으로 찐 다음, 뼈와 살을 분리해 완전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미친 내용이었으며, 아내 외에도 "늙은이(장모)를 때려죽이겠다.", "아내의 남자 형제들도 다 죽이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사건 발생 20여일 전, 강씨는 장모의 집 앞에 최후통첩식의 협박 편지를 붙여 놓았다.
앞으로 일주일 준다. 9월 30일까지 잘못을 뉘우치고 와라. 그래도 아니면 나도 너를 잡는다. 9월 30일까지 너를 못 잡으면 나는 다른 것을 잡으러 간다. 바로 잡으러 내려갈 것이다. 지켜봐라.
이 편지에 적힌 마감시한인 9월 30일로부터 9일이 지난 10월 9일에 윤씨가 살해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당일 강씨의 이동경로와 CCTV에 찍힌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로 강씨를 살인 용의자로 구속하지 못했다. 대신 강씨는 아내 폭행 및 협박, 재물손괴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러나 강씨의 아내에 대한 분노는 교도소에서 더욱 증폭되었고, 교도소 안에서도 끊임없이 협박 편지를 보내왔다.
살인범으로 뒤집어 씌워서 나를 영원히 죽이려고 했는데 그렇게 안 되어서 보통 일이 아니지
어떻게 반성해야 되는지도 다음에 내가 나가서 가르쳐 줄 거야
사실 이 사건엔 결정적인 목격자가 2명이나 있었는데, 마을에 사는 유씨와 최씨였다. 말투가 어눌한 유씨는 이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목격자였는데, 10월 9일 저녁 7시 10분에 낯선 빨간 차와 검은 차 2대가 윤씨의 집 옆 담벼락에 정차했고, 빨간차에서 내려 윤씨의 집으로 향한 사람이 바로 사위 강씨였다는 것이다. 당시 윤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아들이 삼계탕을 먹고 집을 나온 것이 저녁 6시 50분~7시 무렵이었으므로, 아들이 집을 나선 직후 강씨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또다른 목격자 최씨도 운동을 끝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던 찰나에 차 한 대를 목격했는데, 그 차의 색깔이 빨간색이라고 했다. 최씨의 집은 윤씨의 집 바로 뒷집이었는데 내리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당시 시각은 저녁 7시~7시 30분이라고 했다. 이 2명의 목격자가 목격한 낯선 차의 색깔과 시간이 모두 일치한다. 한편 최씨는 사건 이전에도 강씨가 장모의 집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는데, 바로 그때 강씨가 끌고 온 차의 색이 빨간색이라고 기억했다.
경찰이 사건 당일 강씨의 무인단속, 방범 CCTV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2명의 증언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사건 초기에 형사들은 이 2명의 진술을 별로 중요하게 듣지 않았는데, 경찰은 범행 시간이 밤 10시경이라는 추정에 집착하고 있었던 데다, 강씨가 친구와 술을 마신 후 당일 저녁 7시에 황씨를 만나 황씨의 머리카락과 담배를 수집해 부여로 가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았다. 즉, 경찰이 추정하기에 강씨가 안산에서 황씨와 만난 시각과 목격자들이 부여에서 강씨를 봤다고 증언한 시각이 저녁 7시로 충돌하기 때문에 목격자들의 말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황씨는 강씨와 만난 날이 10월 9일이라고 얘기한 적도 없고, 자신은 그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남은 건 식당의 기록뿐인데, 식당에선 일일이 손님들의 출입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식당 내부와 입구를 촬영하는 CCTV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수사초기에 CCTV 자료를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황씨와 강씨가 식당에서 만난 날짜를 기록할 CCTV 자료는 시간이 지나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의 초동수사 실패와 강씨와 황씨가 만난 날짜를 멋대로 10월 9일로 추정해 버린 점이, 이 사건이 미제사건이 돼버리는 크나큰 우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