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하면 흔히 떠올려지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호감형 얼굴과 특유의 말솜씨, 그리고 승용차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2005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10명을 살해하였다. 대한민국의 흉악범을 논할때 유영철과 함께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다.
1969년 충청남도 서천군 농촌에서 오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고향 인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정남규나 유영철, 김해선, 온보현 같은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강호순은 성장 과정에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성 학대 흔적’이 없다.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이유 없이 체벌한 적이 없으며 가정형편도 부농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먹고 살 만큼의 전답을 부치고 살았고, 가족 간의 갈등도 없었다고 한다. 강호순의 행적 어디에서도 살인마가 될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판결문에선 아버지가 아내에게 (강호순의 어머니) 가정폭력을 행한 사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인터뷰한 그의 고향 마을 주민 역시 그의 아버지가 '평소에는 조용했으나 술을 마시면 성질이 불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시 여성 인권이 바닥이고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탓에 이런 집안이 대다수였기에 강호순의 성장 배경은 동세대의 다른 집안과 비교해도 지극히 평범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04년 무렵 경기도 남부 일대에서 여성들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실종될 때마다 확실한 증거는 없는데, 거의 비슷한 지역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나서 '연쇄실종'이라면서 보도되기도 했다. 그 중 일곱 번째로 군포에서 여대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실종된 여대생을 살해하고 피해자 카드로 돈을 인출하려다 덜미가 잡히자, 자신의 승용차와 모친의 차량도 불태워 되레 의심을 키웠고, 결국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붙잡힐 때만 해도 얼굴을 가리는 등 신원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여론이 이에 반하는 분위기로 흐르자, 얼마 후 공개했다.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률이 마련되는 계기가 된 범죄자이다.
경찰에 붙잡히고도 "증거 가져와라."며 결사적으로 항변했지만, CCTV에 비친 얼굴과 희생자에게서 나온 DNA 검사 결과, 범인으로 확정되면서 그간의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나름 훈훈하게 생긴 얼굴이라 결혼도 여러 번 했다. 범행 대상 중 여섯 시간 동안 차에 감금되었다 살아난 40대 여성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첫 인상은 상당히 순진하고 순박한 축산업자의 느낌이 강해 속아 넘어가기 쉬웠다고 한다. "1차 자리에 모인 30여 명 가운데 강호순이 잘 생겨서 눈에 띄었다."며 그의 첫 인상을 설명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난 멀쩡하게 일하면서 살긴 힘들고 여자 등치는 게 제일 쉽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동네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심각한 여성 편력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주위에 소개팅을 주선해달라고 조르며 실제로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차를 몰고 길거리에서 헌팅에 가까운 형태로 모르는 여성들을 자주 유혹했다고 하며, 성공한 적도 꽤 있어서 친한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참고로 네 번째 아내와 동거하면서도 다른 내연녀를 만들었으며, 범행 당시에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람을 잘 꼬드기며 인간을 소유와 지배·통제 대상으로 보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2005년에는 네 번째 아내와 장모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든 지 얼마 안 돼 그들을 방화로 살해해 4억에 달하는 보험금을 탔다. 이후 강호순은 유흥업소, 정신과를 다니며 전국을 방황하는 생활을 했으며, 강원도에서 군청 직원을 강간 살해한 것으로 강호순의 범행이 시작되었다.
2006년 9월, 강원도에서 실종된 정선군청 여직원 윤모 씨(당시 23세) 실종사건도 강호순의 행적을 따라가는 도중 드러난 추가 범행이다. 공식적으로 첫 번째 희생자라 하겠다. 윤모 씨의 오빠는 경찰이 되었다고 한다.
개 농장을 했는데 이 사진은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찍었을 뿐이고 실제로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잡아먹었다고 한다. 거기다 농장에서 키우던 수십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추운 겨울에 먹이도 주지 않고 동사시킨 것도 알려졌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도록 철저하게 위장하며 살아온 듯하다. 엄인숙과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냥 좋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신뢰를 쌓았다. 동네 주민들 중에는 강호순이 '사위나 동생 삼고 싶을 정도로 싹싹한 성품에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증언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밤이면 강호순은 1세대 구형 에쿠스와 무쏘를 타고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강호순이 교활했던 점은 희생자들의 눈에 잘 띄는 차량 앞좌석 쪽에 '개와 찍은 사진' 등을 놓아 그들을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쇄살인범 게리 리지웨이가 쓴 수법과 비슷한데, 사실 강호순과 리지웨이는 전형적인 성적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이다. 주로 추운 겨울 버스가 잘 오지 않는 정류장에 홀로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를 태워준다고 하고 여성들을 데려가 강간 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매장해 왔다. 이때 희생자의 손톱을 가위로 잘라 자신의 혈흔을 남기지 않고 범행에 사용된 1세대 구형 에쿠스와 무쏘를 소각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강호순의 신상이 공개되자마자 "내 얼굴 공개됐는데 자식들은 어쩌라고?" 식의 항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포 이전 가족들의 생활을 보면 자식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이 적당히 용돈 주고 '너희들이 알아서 사 먹어라'는 식으로 신경 끄는 타입이었다. 실상 가족들에게도 별 관심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이를 입증하는 사실이 강호순의 아들이 2007년 가출 후 절도 행각을 벌였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것인데 강호순이 제대로 된 아버지라면 자식이 가출까지 했을까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형제나 자식들도 아버지(강호순)가 엄청나게 못된,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강호순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으로, 유영철보다도 훨씬 과거의 사이코패스들의 구속 후 보인 행동 양태와 닮아 있다. 그런데 전문가 중에는 소시오패스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위에서 언급한 항의와 달리 실제로는 가족을 걱정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강호순의 희생자는 방화 사건을 제외하고 8명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최소 8명이라는 뜻으로 다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증거로 채택된 곡괭이에서 또 다른 두 명의 DNA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밝혀진 피해자들이나 당시의 실종자들의 데이터 베이스의 DNA와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범행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증거가 나와야만 범행을 시인하던 강호순의 특성상 또 다른 피해자의 DNA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당시 상당수의 실종자들의 DNA를 확보하지 못했던 탓에 끝내 대조에 실패했고, 그 진실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1. 2006년 9월 7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출근하던 군청 여직원 윤모 씨(23세)를 차량으로 유인하여 납치해 에쿠스 차량 안에서 성폭행 후 살해. 살해 후 시신은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야산에 암매장.
2. 2006년 12월 14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노래방도우미 배모 씨(45세) 살해. 2차를 나가자고 제안하여 차에 태운 뒤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 도로상에서 목졸라 살해. 살해 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위치한 비봉IC 옆 야산에 암매장.
3. 2006년 12월 24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에서 노래방 도우미 박모 씨(36세) 살해. 차 안에서 목 졸라 살해 후, 안산시 상록구 사시동에 위치한 야산에 암매장.
4. 2007년 1월 3일.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회사원 박모 씨(50세) 살해. 차량으로 유인 후 납치하여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에 위치한 야산에 암매장.
5. 2007년 1월 6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서 노래방도우미 김모 씨(39세) 살해. 차량으로 유인 후 납치하여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함. 이후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 공터에 암매장.
6. 2007년 1월 7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정류장에서 여대생 연모 씨(20세) 살해. 차량으로 유인 후 납치하여 살해한 뒤 금곡동 인근 하천변에 암매장.
7. 2008년 11월 9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정류장에서 주부 김모 씨(48세) 살해. 시신의 손가락을 자른 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인근 야산에 암매장.
8. 2008년 12월 19일. 경기도 군포시 보건소 앞에서 여대생 안모 씨(21세) 살해. 시신의 손가락을 자른 뒤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 위치한 논두렁에 암매장.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강호순은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었다.
2009년 4월 9일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다. 그리고 결국 4월 22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판결문
이에 강호순은 사형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것도 변호인과 상의없이 자기가 직접 항소장을 작성해서 항소했다. 단, 구속피고인이 변호인과 상의없이 직접 항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그렇게까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2009년 7월 23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었다.
강호순 스스로도 자신에게 사형 선고가 부합하다며 최후진술을 마쳤고 그에 따라 상고를 포기하면서 2009년 7월 31일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는 사형수로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