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1일 오전 8시경,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던 박만덕(당시 76세) 할머니가 자신의 집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 사건.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이 있다면 함안경찰서(055-582-0112)로 제보하자.
2월 21일 동네 주민 김 씨 등 3명은 피해자 박 씨의 큰며느리로부터 시어머니와 연락이 안 되니 안부를 확인해달 라는 부탁을 받고 방앗간으로 향했다. 방앗간에서 그들이 목격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는데 부직포로 덮힌 물체가 보였고 부직포를 들추는 순간 피로 범벅이 된 박 씨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시신 주변에 많은 피가 비산되어 있었고 얼굴과 머리에 흉기로 수 차례 가격한 흔적이 있었다.
피해자 박 씨는 자식들과 떨어져 마을에서 홀로 방앗간을 운영 중이었으며 인심이 좋고 원한 관계도 없는 데다 마을 사람들에게 평판도 좋은 사람이었다. 방앗간이 있는 피해자의 집에선 침입 흔적도 없었고 사라진 금품도 없었으므로 강도에 의한 범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장에선 피해자가 쓰러진 곳으로부터 9개의 혈흔이 일정한 간격으로 연결돼 있었고 그 혈흔의 자취는 방앗간 내 우물 앞에서 끊겼다.
우물을 퍼올린 결과 범인은 우물 속에 범행 도구를 은닉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물 속에 감춰져 있던 범행 도구는 무려 쇠망치와 시멘트 벽돌 2개였는데 이런 무자비한 도구로 고령의 노파를 무참히 가격해 살인했다. 그러나 범행도구에선 범인의 지문이나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범인이 피해자를 부직포로 덮은 것으로 보아 면식범이거나 가까운 관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경찰은 가까운 집들을 탐문하던 중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는데 노파의 집에서 50m 떨어진 이웃 남자의 집에서 남자가 황급히 빨래를 하고 무엇을 불로 태우는 것이 포착되었다. 경찰은 이 남자를 수사하던 중 남자의 운동화에서 2군데에 혈흔이 묻은 것을 발견했다. 왼쪽 운동화에 직경 4mm의 원형 혈흔, 오른쪽 운동화에 문질러진 흔적의 혈흔이었다. 검식 결과 혈흔의 주인은 살해당한 박 씨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당사자 김 씨(33)를 사건의 범인으로 확신하고 10일 뒤 긴급 체포했다.
김 씨는 무직으로, 사건으로부터 4년 전 가족들이 고향을 떠난 뒤에는 홀로 살아 왔으며 피해자인 박 씨와 지속적으로 왕래했는데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니며 전과 18범에 마을에서 사고뭉치로 낙인찍힌 문제아였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김 씨를 경계해 왔는데 예외적으로 피해자였던 박 씨만 이 남자를 가족처럼 보듬어줬다고 한다. 김 씨는 특히 술이 들어가면 마을에서 온갖 행패와 난동을 부렸는데 박 씨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씨는 수시로 박 씨의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돈을 빌려갔다고 한다.
김 씨의 깽판에 지친 박 씨도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며 김 씨에게 절대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하는데 바로 다음날 박 씨가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김 씨가 박 씨의 이 행동을 눈치채고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니는 데 격분해 박 씨를 살해했거나 돈을 요구했음에도 거부당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법정은 대한민국 검찰청이 아니라 피의자 김 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0년 8월 22일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은 시민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재판으로 치러졌다. 시민 배심원 9명은 "김 씨가 범행을 저질렀을 의심은 가나 운동화에 남은 핏자국 하나만으로 김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모아져 무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배심원 전원의 평결을 받아들여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범행을 직접 본 목격자도 없고 간접증거였던 운동화의 혈흔이 김 씨가 할머니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묻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며 김 씨에 대한 무죄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씨의 운동화에 묻은 핏자국이 다른 경위로 묻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김 씨를 범인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논지였다.
이에 검찰은 항소했으나 부산고등법원에서 일반재판으로 열린 2심도 같은 이유로 기각되었고 결국 2011년 10월 10일,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도 기각한 채 김 씨의 무죄를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제출된 모든 증거들을 살펴봐도 김 씨의 운동화에 형성된 혈흔이 범행 당시 묻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무죄를 유지한 2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으며 "형사소송에서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는 검사가 제시해야 하고, 피고인 진술이 거짓말같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 없다"며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피의자 김 씨는 평소 가깝게 지냈던 박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방앗간으로 달려가 부직포를 들추어 보던 중 피가 자신의 운동화에 떨어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몇 년이 흐른 후 인터뷰에선 불로 태운 것은 단순한 쓰레기였으며 황급히 빨래를 한 이유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나오자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법원에선 김 씨의 운동화에 묻은 혈흔만으로 김 씨를 살인범으로 단정할 수 없고 다른 경위로 피가 묻었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경찰은 단지 혈흔과 DNA 일치만으로 김 씨를 범인으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찰은 혈흔이 말해주는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실험도 진행했다. 피의자의 왼쪽 운동화에서 발견된 또렷한 혈흔은 원형의 모양이었다. 만약 김 씨의 주장대로 부직포를 들추었을 때 시체의 피가 떨어져 운동화에 묻은 것이라면 동일한 조건의 실험을 진행했을 시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부직포를 들추어 피가 수직으로 신발에 떨어지는 경우엔 피의 흔적이 잘 남지 않고 남아도 타원형의 모양이 생겼다. 그렇다면 김 씨의 운동화에 남겨진 원형 혈흔은 어떤 경우에 생기는 흔적인 것일까? 경찰은 망치로 혈액을 강한 충격으로 내려쳤을 때 혈흔이 비산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강한 충격을 받은 피가 수평으로 신발에 튀었을 때 원형 혈흔의 모양이 생겼다. 즉, 김 씨의 운동화에 새겨진 혈흔은 피해자가 쓰러진 상태에서 머리를 둔기로 강하게 내리쳤을 때 수평으로 피가 튀는 모양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현장 사진에서 비산된 혈흔은 피해자의 왼쪽에 집중되었다. 경찰은 이를 보아 범인이 피해자의 왼쪽에서 공격을 했다고 추정했으나 사진을 분석한 현역 검시관은 반대로 피해자의 오른쪽에서 공격을 한 것으로 추론을 했다. 실제로 방송국에서 양쪽 가설대로 둘 다 실험을 한 결과 왼쪽에서 공격을 한 경우에는 운동화가 피로 범벅이 되지만, 오른쪽에서 공격을 했을 때에는 몇 방울의 피만 튀어 김 씨의 운동화 상태와 비슷한 결과가 얻어졌다.
범인이 둔기를 쇠망치에서 시멘트 벽돌로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가격 중 망치 손잡이에 피해자의 혈액이 많이 묻어 손에서 망치를 놓친 것으로 보았다. 이 가설에 따르면 날라간 망치가 범인의 얼굴을 가격해 상처를 냈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피해자가 쓰러진 지점에서 통로로 이어진 혈흔의 양이나 모양을 분석했을 때 가해자가 범행→현장 정리. 도구 은닉 후 이곳저곳 돌아다닌 게 아니라 한 번에 바로 빠져 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범인은 이 집안의 지리와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관계라는 것이 된다.
피해자 박 씨의 시신은 2월 21일 발견되었으나 경찰은 사망 시점이 시신 발견 하루 전인 2월 20일 오전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박 씨는 2월 20일 오전 10시 15분에 마지막으로 목격됐는데 바로 그 직후에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사망 추정 시각에 따라도 유력한 범인은 김 씨로 흐르게 되는데 바로 그 시간에 박 씨의 집 앞 대문 근처에서 김 씨가 목격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자신이 평소 마을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는 것을 좋아해 그 시간에도 방앗간을 지나 냇가로 가던 중에 우연히 목격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한 겨울인 2월에 냇가에서 다슬기가 잡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다슬기의 제철은 5~6월, 즉 여름이 돼야 한다.
사건 현장에서 혈흔을 따라간 우물 근처 마당에서 피 묻은 담배꽁초가 나왔는데 DNA 분석 결과 꽁초에 묻은 피의 주인은 바로 피해자 박 씨의 큰아들이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범인을 큰아들로 의심하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큰아들은 평소 부모와 사이가 좋았고 효심이 있었으며 별 다른 원한관계도 없었다. 더구나 추정 범행일인 2월 20일에 다른 곳에서 따로 살고 있던 큰아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아파트 CCTV를 통해 확인됐으며 회사에서 퇴근한 후엔 계속 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확인되었다. 아들은 담배꽁초에 피가 묻었던 이유에 대해서 어머니의 살해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당시 입술이 터 있던 상태라 담배를 필 때마다 꽁초에 피가 묻었다고 해명했다.
사실 경찰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많은 증거들을 놓쳤다. 현장 사진에서 피해자의 집 거실에선 의문의 족적이 나왔으며 벽과 냉장고 손잡이에도 혈흔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검안의가 현장에서 실수를 해 덧신을 신고 들어가지 않아 족적이 생긴 것이며 혈흔도 검안의의 자국이라고 보고 이 흔적들을 무시했다. 그러나 피고인 김 씨의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검안의는 곧바로 덧신을 바꿔 신었고 족적과 혈흔이 누구의 것인지 정확한 분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흔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이 집안의 흔적들은 거의 무시하다시피 한 것이다.
방앗간 창고 구석에선 피해자의 피 묻은 신발이 나왔으나 경찰은 이것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는 경찰이 신발에 묻은 혈흔에만 집착해 추가 증거를 보완 수집하는 것을 무시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 인터뷰했다. 혈흔 하나만으로 유죄를 확신한 경찰의 섣부른 판단과 방심이 또 하나의 미제사건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김 씨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그의 악행은 계속 이어졌는데 풀려난 김 씨가 재판 중에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마을의 한 할머니를 기습해 공격했다. 결국 김 씨는 새로운 죄목인 협박과 폭행죄로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수감 중 폭행당한 할머니에게 잘못했다며 안부 편지를 4통이나 보냈지만 그 편지는 겉으로는 사죄의 형식이지만 속 내용엔 원망의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출소 후 김 씨에게 보복을 당할까 불안에 떠는 모습이 TV 방송에 잡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