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 京畿道 , Gyeonggi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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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부터 사용 중인 경기도의 휘장이다. 경기도의 초성 'ㄱㄱㄷ'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이자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리적으로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와 접하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권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자, 유일하게 인구가 천만명을 넘는 광역자치단체다. 경기도는 충청남도와 더불어 군보다 시가 더 많은 지역으로 산하의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군은 단 3개뿐이며(가평군, 양평군, 연천군) 나머지는 모두 시고, 특히 이들 중 11개 시는 인구가 50만명을 넘어 대도시 특례를 받고 있을 정도로 발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심지어 양평군조차도 광역시 산하 군 지역을 제외한 군 중에서는 인구 수 1위인 지역이다.

강원특별자치도와 더불어 남북분단으로 갈라진 도다. 다만 북한 행정구역 상에서는 서울을 수도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경기도를 의도적으로 제거하였다.

원래 한성부와 경기도로 나누어져 있던 조선시대까지는 경기감영(경기도청)이 성저십리 돈의문 바깥에 있었다. 경기감영 터는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서울적십자병원을 찾아가면 된다. 원래 경기감영이 있던 곳에 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1896년에 감영을 수원으로 이전하여 수원화성 내에 있는 화성행궁을 경기관찰사와 수원군수가 함께 일하는 합동청사(경기도 관아+수원군 관아)로 전용했지만, 한일합방 직후에 경성부로 이전하면서 대한제국의 내부(內部) 청사를 조선총독부의 경기도청으로 전용했다. 1995년에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판정하면서 철거한 조선총독부의 경기도청은 조선시대의 의정부 청사가 있었던 곳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6-14(수도권 전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과 前 문화체육관광부 자리)에 있었다.

1953년부터 도청 이전이 거론되면서 이전 위치를 놓고 인천과 수원이 대립했으나 1963년 수원으로 확정되면서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했다.  2022년에는 광교신도시로 도청을 이전했으나 주소상으로는 여전히 수원에 있다.

다른 도의 이름은 고려시대~조선시대 지역 내의 대표 도시 두 곳의 첫글자를 딴 것이지만, 경기도라는 이름은 수도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경기(京畿)' 에서 따온 것이다.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경기(京畿)는 서울(수도)을 뜻하는 '서울 경(京) 자'와 수도의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경기 기(畿)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수도를 중심으로 한 가까운 주위의 지방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 행정구역의 한 단위인 도(道)를 붙여 고유 지명인 경기도(京畿道)가 된 것이다. 경기도라는 명칭은 본래 중국의 당나라에서 수도였던 장안의 권역을 가리킬 때 사용했고, 당나라의 행정구역 용어를 차용한 고려와 조선에서는 경기의 세부 구역에 각각 경기○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아울러 부르거나 경기 하나만을 운영할 때는 경기라는 명칭으로 사용했으며,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경기도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혹 문화적 측면에서 수도를 포함한 "권역" 일대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부터 수도권이라는 의미로 경기, 기내(畿內)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일례로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킨키(近畿), 혹은 키나이(畿內)라고 하며 이 기(畿) 자를 사용하는데, 모두 수도 주변이란 뜻이다. 메이지 시대에 수도가 에도(도쿄)로 바뀌기 전까지 일본의 수도는 항상 간사이 지방에 있는 교토였기 때문이다.

경기가 기록된 사례는 신라 때가 최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수도 서라벌 중심지(경주 분지 가운데 지역) 동쪽은 대성군(大城郡), 서쪽은 상성군(商城郡)을 두었는데, 전국 다른 군은 밑에 현(행정구역)이 있는 것과 달리 이 대성군과 상성군 두 군은 특이하게 아래에 현 대신 정(停)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상성군은 남기정(南畿停), 중기정(中畿停), 서기정(西畿停), 북기정(北畿停), 막야정(莫耶停) 5개의 정으로 되어있고, 대성군은 약장현(約章縣)과 동기정(東畿停)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기(畿) 자는 '도읍의 주변'이란 뜻으로, 바로 경기도 할 때의 기 자다. 지리적 위치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대성군과 상성군은 일종의 경기도, 내지는 수도권 역할에 해당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정황상 여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왕경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 역시 이 정도 범위까지 포함된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신라의 공식 행정구역명은 '동서남북+기'로 여러 개로 쪼개져 있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여러 구절에 의하면 이를 통틀어 경기(京畿)라는 이름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경기라는 이름을 별칭이 아닌 실제 행정구역 이름으로 사용된 사례는 고려 때가 최초다. 1062년, 문종이 서경에 부속도서 '경기사도(京畿四道)'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한국사 최초의 경기도다. 서경을 중심으로 경기도가 네 구역으로 나뉘어 감싼 것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1390년, 고려 마지막 국왕인 공양왕은 수도 개성부에 부속 행정구역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 이것은 중앙 수도에 경기도가 설치된 최초의 사례다.

신라나 고려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경주시나 개성시 주변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조선 건국 후 공양왕의 전례를 따라 수도 한성부를 중심으로 교외 행정구역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가 다시 태종 때 경기좌·우도를 경기라는 이름으로 통합한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경기도다. 한편 이렇게 경기를 만들면서 기존의 양광도에서 북쪽 반 쪽 정도가 잘려나갔는데, 양광도의 남은 반쪽을 기반으로 충청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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