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교 사체 유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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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23일 새벽,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김지현이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짝사랑하던 남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사건. 시신은 44번 국도 인제대교 아래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었으나 범인은 끝끝내 잡히지 않아서 21년째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김지현은 집안이 가난했지만 간호사가 되겠다는 작은 꿈을 가지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였다.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의 주인은 맹장이 터질 것 같은 위기에서도 자신의 할당량은 꿋꿋이 채우고 알바 동료도 챙겨줄 줄 아는 성실하고 착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가정사정상 대학 진학은 힘들었지만 어찌 간호학원은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작은 기쁨을 느끼고 졸업 후 친구들과 뒤풀이를 했으나 그날 변을 당했다.

인제 군민들 사이에서는 당시 이 사건을 두고 피해자의 배경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경제사정을 비관한 자살이란 의견도 있었지만 김지현의 이웃사촌이나 김지현의 가장 가까운 지인들은 김지현이 가난했을지언정 실제로 자살할 성격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군민들은 이 사건의 충격으로 외출을 경계하는 반응을 많이 보였으며 사건 당일로부터 1개월 반 뒤에는 인제 광치령 토막 살인 사건까지 터져서 지역 사회가 완전히 뒤집어졌고 경찰 인력들도 대부분 그쪽으로 투입되었다고 한다.

김지현은 졸업 후 뒷풀이로 지인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중간에 짝사랑하던 남자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지인 한 명이 혹시 모르니 같이 가 줄까 했지만 김지현은 거절하고 괜찮으니까 혼자서 다녀오겠다고 했다.

김지현이 짝사랑하던 남자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인제남초등학교-인제체육관 방향으로 걸어간다는 연락(2월 23일 오전 1시 38분)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두절되었다.(2월 23일 오전 2시 6분)

김지현이 짝사랑하던 남자도 용의선상에도 있었지만 김지현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뒤 PC방에 들어가서 대학 정보 검색 및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이나 넷마블 등 게임 포털을 이용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도 이는 경찰의 PC방 접속기록 조사 결과 알리바이로 인정되었다. (사건 당일 01:59~04:52까지 PC 사용)

얼핏 볼 때 떨어진 충격으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시신 주변의 난간을 과학 수사했으나 잡은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스스로 뛰어내리지 않았을 가능성에 크게 무게를 실어준다.

부검을 분석한 프로파일러들은 떨어져 죽었다기에는 이상하게도 얼굴 좌측면에는 거친 충격흔이 없었다고 하며 멍이 든 건 다리에 떨어지기 전 맞은 상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피해자 입 주변에는 뭔가 심하게 맞은 흔적이 있으며 양팔과 손등의 방어흔을 지적했다. 방어흔이 있다는 건 그녀가 타살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주며 목을 졸라야 생길 수 있는 점출혈도 발견되어서 범인은 확인사살을 하기 위해 목까지 졸랐음을 추측할 수 있다.

피해자를 납치했어도 수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차량을 은폐시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러야 하기 때문에 범인의 입장에서는 범행을 할 만한 공간이 필요했는데 인제대교를 지나면 보이는 인제휴게소가 가장 알맞는 장소라는 것이다. 당시 경찰들도 인제휴게소가 범행 장소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수사를 이어나갔던 걸로 보이며 더군다나 휴게소 주변에 살던 사람이 새벽 3시~3시 반 쯤에 차가 헛바퀴를 돌아 미끄러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혹시 그 차량이 범인이 타고 있었던 차량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인제 방향에 있는 인제휴게소에서 서울 방향에서 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대교 진입 직전에 오른쪽 샛길로 빠져서 굴다리를 통과한 뒤 인제대교 옆에 있는 군축교를 지나는 루트가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인제대교를 쭉 타다가 다리가 끝난 직후 옆에 합쳐져 오는 샛길을 역주행을 타서 다시 휴게소 쪽으로 올 경우에 언덕을 타야 하는데 여기서 헛바퀴가 났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 루트를 선택했다면 확실히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살인 동기는 불분명하지만 성폭행일 가능성이 높은데 정액반응이 양성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하지만 정액반응이 없다고 해서 성폭행 사건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어서 일단은 성폭행 후 살해가 아니겠느냐고 추정되었다. 다만 피해자의 체내에서 정액 반응이 없다고 하더라도 몸의 다른 쪽에서 정액반응이 있을 가능성도 있어 다른 쪽 검사도 하지 않았나 싶었지만 당시 부검의와의 전화통화에서는 체내 정액반응만 하고 다른 곳은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뒤 인제초 방향으로 갔다고 하는데 인제초 방향으로 가면 인제대교로 꺾어지기 전 인제터널 입구에 위치한 육교를 건너야 했지만 도로가 막혀있고 진입하려면 남측의 나들목에서 2번 연속 좌회전하여 진입해야 했기 때문에 이 길에서 납치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의 히치하이킹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김지현은 절대로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탈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더 묘한 건 시신이 발견된 곳이 서울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인제 읍내로 돌아가는 동선 방향이었다는 점이다.

왕씨는 당시 김 양의 어머니와 재혼했는데 그녀에게는 재혼한 상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한 명 있었다. 왕씨는 김 양의 사후 경찰 수사에 난리 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막상 알고 보니 김 양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이런 모습에 경찰은 왕씨가 상당히 수상했다고 한다. 왕씨는 유통업체 배달 직원이었는데 당시 흰색 소형차량을 끌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서도 왕씨의 차량의 감식도 한 것 같지만 딱히 이렇다 할 증거물은 나오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도 해 봤으나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궁금한 이야기 Y 방영분에서 왕씨와 전화 인터뷰를 하였는데 위에서 설명한 역주행하는 길을 알고 있었고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일이 끝나면 10시에 퇴근하는데 이후에 김양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정까지 군축교 주변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왜 왕씨는 김양의 소식이 끊어져 버린 인제체육관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군축교 주변을 찾아다녔던 걸까? 그리고 실종 접수 시간은 오전이었는데 어떻게 자정 이전에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김 양의 어머니는 왕씨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딱히 찾으려고 부탁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15년 만에 그것이 알고싶다에 한 제보자가 연락을 해 왔는데 제보자 김○○씨(방송에서는 허○○라는 가명으로 나옴)는 너무나 기묘한 장면을 본 터라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말을 걸어왔지만 정확한 시기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으며 한일 월드컵 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월드컵 이전에 발생한 일 같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틀렸다. 하지만 이수정 등의 범죄 심리학자들은 시간과 장소를 틀리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며 진술의 신빙성도 높다고 하였다.

사실 이 사건을 2015년에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접한 뒤 지인에게 제보해야 하냐고 자문을 구했는데 신고해 봤자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귀찮아진다면서 하지 말라고 했다는 조언을 듣고 잊고 있다가 방송에서 언급되고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에 뒤늦게나마 제보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부터 진술 내용이다.

그는 과거 어느 날 속초시에서 미시령을 타고 인제대교 근처를 운전하다가 한쪽 차선에 뜬금없이 구난차와 흰색 다마스가 주차되어 있고 근처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마네킹이라고 생각하는 걸 집어던지는 장면을 보고 ‘마네킹을 왜 저기다 버리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최면으로 꺼낸 기억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는 2.5톤에서 3.5톤으로 보이는 노란색 구난차가 차량 뒤에 있는 서치라이트를 앞으로 비추고 있었다고 하며 그가 구난차를 발견한 후 구난차가 유턴해서 라이트를 켜지도 않고 자신의 차량을 쫓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깜짝 놀라 추적을 뿌리치려고 운전했다고 한다. 피의자의 형상은 진한 파란색 계통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빼면 기억이 흐릿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긴 어려웠으나 상황의 재구성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구난차를 보긴 봤는데 안타깝게도 차 번호는 기억에서 끄집어내지 못했다. 대신 견인차의 형상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견인차 톤수는 2.5~3.5톤이었고 구난차 위 약간 뒤쪽에 서치라이트가 달려 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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