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특별시 서남부 지역 일대를 공포에 떨게 만든 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이자 쾌락살인범, 가정파괴범. 최종 확정판결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수감 중 자살했다.
그는 2004년 1월 14일부터 2006년 4월 22일까지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범죄자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며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그 후 보강 조사에 의하여 범행의 대부분이 밝혀졌다.
정남규는 수사기관 조사 과정에서 “피 냄새 맡고 싶다. 피 냄새에서는 향기가 난다”고 말하였으며, “백 명을 죽여야 하는데 채우지 못 하고 잡힌 게 억울하다”며 살인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였다. 법정에서는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토로하였다.
흉악성으로는 KCSI 요원 사이에서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전문 프로파일러들조차도 그의 평가에는 일단 욕을 넣고 보는 최악의 연쇄 쾌락살인범. 어떻게든 중벌을 피하고 싶어 동정론에 호소하고 최대한 사실을 숨기려 들며 증거를 들이대도 일단 아니라고 우기고 보다가 견디지 못하면 그제야 자백하는 일반적인 절대 다수 범죄자들과 달리 시키지도 않은 자백을 알아서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등 사형조차 두려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쇄살인범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사례이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범행을 감추거나 스스로도 까먹기도 했다. 링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세 차례(301회, 579회, 632회)에 걸쳐 정남규를 다룬 바 있다. 2019년 10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 1188회에서 사망하기 얼마 전 정남규의 얼굴이 공개가 됐다. 아래의 썸네일과 1:53 경에 오른쪽 2번째에서 나온다.
1969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A]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가정의 3남 4녀 중 다섯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 홀로 남원에서 자취하며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온 가족이 인천광역시로 이사하게 되자 영진상업고등학교로 전학했다. 그의 학창 시절 성적은 중하위권이었고 고등학교를 마친 후 4개월간 음료 공장에 다니기도 하였지만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그만두고 방앗간에서 배달 일을 하거나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군입대를 하였으며 육군 하사로 만기 제대(1992년)하였다. 이후 무직으로 생활하였으며, 절도 등 범죄 행위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정남규는 어린 시절 아버지(1999년 사망)의 끊이지 않는 폭행과 자신을 아낀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추행과 성폭행, 성희롱을 당한 일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동급생이나 선배들에게 집단괴롭힘과 학교폭력을 겪었고 후배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자취방 옆에 살던 아저씨에게 두 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군대 복무 시절에도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심한 구타를 겪었고, 한 선임에겐 또 다시 성폭행을 당했다. 후임들에게는 기수열외를 당하는 등 군 전역 후 사회생활을 힘들어하며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됐다.
1989년 4월 특수강도죄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1994년 절도죄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20만 원 등의 선고를 받은 후 1996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2년 6월, 1999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절도, 강간 등) 징역 2년, 2002년 절도죄로 징역 10월 등 총 3년 4개월간 교도소에 수용된 경험이 있었다.
검거 당시까지 어머니, 친누나와 인천 부평구의 한 주택에서 3명이 함께 살았지만, 가족 중 직장을 가진 이가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머니 명의의 낡은 주택에 딸린 방을 세놓고 받는 월세 55만 원이 정남규가 절도 및 강도로 충당한 돈을 제외하면 수입의 전부였다.
그가 진술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가난,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가혹행위, 기수열외, 집단따돌림 등 인생에서 당할 수 있는 온갖 끔찍한 폭력들을 모두 당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이러한 과거가 그의 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2004년 1월 14일 밤 9시경 버스를 타고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에 내린 후, 놀이터에서 놀던 윤모 군(13세, 남)과 임모 군(12세, 남)을 칼로 위협해 근처 춘덕산으로 데려가 성추행 후 스카프 등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시신은 실종 16일 만인 1월 30일, 아이들의 집에서 3km 떨어진 춘덕산 정상 부근에서 옷이 대부분 벗겨진 채로 발견됐다.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하였으나 정남규가 체포된 후 그의 자백으로 범행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2004년 1월 30일 새벽 3시경, 구로구 구로동의 한 빌라에서 원모 씨(44세, 여)를 수차례 찌르고 중상을 입혔다.
2004년 2월 6일 오후 7시 10분경,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골목길을 지나는 전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살해했다. 이 사건은 유영철이 자백한 후 무죄선고받은 뒤 한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다가 정남규가 체포된 후 그의 자백으로 범행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2004년 2월 10일 오전 6시경,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부 손모 씨(28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2004년 2월 13일 오전 6시 30분경, 영등포구 신길5동 골목길에서 서모 씨(30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중상을 입혔다.
2004년 2월 25일 오전 1시경, 영등포구 신길2동 골목길에서 홍모 씨(29세, 여)를 흉기로 수회 찌르고 중상을 입혔다.
2004년 2월 26일 오전 6시 20분경, 신림4동(현 신사동) 신림시장 골목길에서 출근하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박모 양(17세, 여)을 골목길에서 흉기로 10여 차례 찌르고 중상을 입혔다.
2004년 4월 8일 오전 2시 30분경, 신길4동 귀가 중이던 피해자 정모 씨(25세, 여) 흉기로 수회 찌르고 살인미수.
2004년 4월 22일 오전 3시경, 서울 구로구 고척2동에서 여대생 김모 씨(20세, 여)를 따라가 집 앞에서 흉기로 무참히 찌르고 살해.
2004년 5월 5일 오전 2시 30분경,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최모 씨(22세, 여)를 따라가 흉기로 수회 찌르고 살인미수.
2004년 5월 9일 오전 2시경,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남문에서 귀가 중인 김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10여 차례 찌르고 살해.
2004년 8월 4일 오전 3시경,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주택에 침입해 안모 씨(50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힘.
2005년 4월 6일 오전 1시 30분경,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주택에 침입해 강모 씨(71세, 여)와 한모 양(13세, 여)를 둔기로 내리쳐 부상을 입히고 방화.
2005년 4월 18일 오전 3시경, 서울 금천구 시흥3동 모 빌라에 침입해 잠자고 있던 모자(46세, 12세)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힘. 사건 현장 모습(프로파일러 권일용 유튜브)
2005년 5월 30일 오전 4시 30분경,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부 김모 씨(41세,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2005년 6월 4일 오전 2시 55분경,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김모 씨(3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다.
2005년 10월 9일 오전 3시 20분경, 관악구 봉천11동(현 인헌동) 장애인 주거 시설에 침입해 그곳에서 자고 있던 홍모 씨(39세, 여) 등 2명을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힘.
2005년 10월 19일 오전 5시 경, 봉천10동(현 중앙동) 주택에서 변모 씨(26세, 여)를 성추행 후 목졸라 살해 후 안방으로 들어가 동생 변모 씨(23세, 남)를 둔기로 내리쳐 중상을 입힌 뒤 불을 지르고 밖에서 젓가락을 문에 끼우고 나오지 못하게 하여 중상을 입혔다.
2006년 1월 14일 오전 4시경, 서울 도봉구 창동 반지하 집에 침입해 자고 있는 김모 양(7세, 여)을 추행, 구타하다가 김 양 아버지가 인기척에 깨어나자 도주.
2006년 1월 18일 오전 5시경,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송모 씨(48살, 남)의 집에 침입해 둘째(17세, 여)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 후 목졸라 살해한 뒤 집에 방화 첫째(21세, 여), 막내(12살, 남), 총 3명을 살해했다. 생존자 겸 유족인 송모 씨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아내와 이혼하는 등 주변 가족들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한마디로 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된 것. 이 때문에 수많은 정남규의 살인사건 중 가장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6년 3월 27일 오전 4시 50분경, 봉천8동(현 청룡동) 2층 단독주택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던 김모 씨(25세, 여)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마구 내려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사건 현장 모습
2006년 4월 22일 오전 4시 40분 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반지하 집에 침입해 자고 있는 김모 씨(24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상해를 입히고 격투 끝에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