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도 컨테이너실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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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3일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에 위치한 섬 돌산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사건 당시에는 '여수 중장비학원 살인 사건'이란 명칭으로도 알려졌다.

피해자는 굴삭기 기사인 이승래(당시 35세)로 자신이 거주하던 컨테이너 안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지만 큰 단서를 찾을 수 없었고 유력 용의자가 자수했다가 진술을 번복하는 바람에 18년째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피해자 이승래(이하 이씨)는 누나 부부가 운영하던 중장비 기사 학원 건물 바로 옆 컨테이너에 거주하며 종종 학원 일도 돕던 굴삭기 운전기사였다.

2005년 12월 3일 토요일 저녁 6시경 함께 일을 나가기로 해 놓고 아무런 연락이 없어 이상하게 여긴 동료 중장비 기사가 컨테이너를 직접 방문했다가 이씨의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 현장은 선혈이 낭자했고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널렸으며 시신에는 칼에 찔린 듯 보이는 수많은 자상이 남아있었다. 부검 과정에서 칼자국이 무려 2백 개가 넘게(238개) 발견되었다고 한다. 워낙 잔인무도한 살인사건이라서 여수경찰서는 곧바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여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잔혹한 살인 수법 때문에 원한에 의한 살인이란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피해자는 딱히 주변에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체격이 건장하여 180cm가 넘는데도 수백 군데를 찔리면서 아무런 방어흔이 없었던 것도 이상했으며 혈중 알콜농도도 낮은 상태라 취해 있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그 수많은 자창 중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치명상이 무엇이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고 피해자의 시신에 남은 상처에 비해서는 현장에 핏자국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망원인을 과다출혈로 결론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신체 뒷면에 집중된 무수히 많은 자창을 분석한 결과 흉기는 2자루 이상이 사용된 듯하였고 범인의 손에도 상처가 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했다. 마침 피해자의 누나도 칼에 손가락을 다쳤기 때문에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현장에 남아있는 머리카락과 혈흔은 모두 이씨의 것이었고 범인이 현장에 남긴 단서는 270㎜ 정도인 전투화 발자국으로 보이는 족적뿐이었다. 경찰은 피해자와 통화한 대상자와 사건 추정시간 현장에서 통화한 3,885명, 돌산대교를 지나간 차량 2,134대, 피해자의 주변인 133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샅샅이 수사했다.

미제사건 전담 팀이 재수사를 진행하면서 당시 수사관들이 남겼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프로파일러와 부검의, 법의학과 교수, 범죄심리학 박사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범인의 윤곽을 추적했다. 현장 사진을 단서로 사건 당시엔 적용할 수 없었던 최신 수사기법인 혈흔분석과 실험을 통해 현장에서의 범인의 동선과 피해자가 살해되기까지 과정을 면밀히 파헤쳤다.

돌산도는 지금은 다리 2개(돌산대교, 거북선대교)로 육지와 이어졌지만 당시에는 거북선대교가 없었으므로 돌산도를 가려면 반드시 돌산대교를 건너야 했다. 살해현장인 컨테이너와 학원 건물은 도로의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 곳 자체가 목적지가 아니라면 굳이 지날 만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범인은 이 장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추정되었다.

범인은 컨테이너에 침입한 후 이씨의 배후에서 공격하여 등과 목을 찔렀고 피해자는 등 쪽에 붙은 범인을 떼어내려고 앞으로 굽혀 기는 자세로 안간힘을 쓰며 몸부림치다가 목 부위 대동맥에 흉기를 찔려 피를 엄청나게 쏟았는데 이후 일어서려고 디딘 오른발이 자신이 흥건히 흘린 피에 두 사람의 체중까지 더해져 심하게 미끄러져 넘어졌다. 범인은 그대로 이씨 위에 올라타 누른 채로 사망에 이를 때까지 흉기를 계속 휘둘렀는데 그렇게 이씨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

핏자국이 적었던 원인은 현장에 나뒹굴던 침대용 매트리스로 밝혀졌다. 매트리스가 바닥의 피를 거의 대부분 흡수했다. 그러나 매트리스는 땀의 흡수를 막기 위해 흡수력이 매우 낮은 재질이었으므로 그 많은 피를 전부 흡수하려면 상당히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매트리스가 바닥에 눕혀진 상태가 아니라 벽에 세워진 형태로 있었으므로 피가 모두 흡수될 때까지 범인이 컨테이너에 계속 머물렀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범인이 현장을 뜨기 전에 피해자를 다시금 칼로 찔렀으리라 추정되었는데 피해자의 등 쪽에 집중된 무수한 자창이 이때 생긴 것으로 보였다. 보통 원한에 의한 흉기 살인은 치명상을 입히는 칼질 몇 번으로 그치는데 반해 이 사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찔렀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휴식기를 거친 뒤 다시 반복해 찔렀다는 점에서 범인의 이상한 집착과 강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후 시신을 숨기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는데 범죄심리분석에 따르면 이는 범인이 피해자의 시신을 최초 발견 가능성이 가장 큰 학원장 부부나 학원생들의 눈앞에 마치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는 듯이 '전시'하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나타난 비정상적이고 광기어린 범행의 동선은 범인이 정신질환을 앓는 학원과 연관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수사선상에 올랐던 용의자 133명 중 단 한 사람만이 정신병력이 있는 학원 관련 인물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했는데 그는 당시 학원생이었던 강모씨(가명)였다.

2005년에 강씨는 국비지원 지게차 면허 5개월 과정을 다니는 수강생이었는데 학원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늘 혼자 있지만 조용하거나 내성적이진 않았고 수강 중 뭔가 관심이 생기면 강사에게 꼬치꼬치 집요하게 캐묻고 누군가의 거슬리는 행동에 쉽게 흥분을 하여 상의를 벗고 시비를 거는 등 원만한 성격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대한민국 육군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했지만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고 1년여만에 하사로 의병 제대했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질환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의 정신과 진료기록은 없다. 다만 강박과 집착이 강한 성향을 보였는데 늘 군인처럼 짧은 스포츠 머리에 모자를 쓰고 수첩을 들고 다니고 여수시내에서 돌산도에 위치한 학원까지 6㎞ 거리를 늘 도보로 이동하기를 고집했다. 수사 초기에는 용의점이 그리 높지 않은 26번 용의자였다고 하지만 이후에 수상한 행적이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다.

강씨는 이씨가 살해당하기 불과 1~2일 전인 11월 30일에 돌연 학원을 자퇴했는데 수료를 일주일 남짓 앞둔 갑작스러운 자퇴였다. 이씨의 사망 추정 시기는 12월 2일 새벽이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인 12월 3일 오전에 강씨는 모친과 함께 황급히 여수시를 떠났다. 시신 발견 5일 뒤에야 경찰은 그를 찾아 조사할 수 있었다. 학원을 그만둔 후에는 계속 집에만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강씨는 휴대전화도, 신용카드도, 운전면허도 없었기 때문에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사람은 모친 한 사람뿐이었다.

조사 중에 경찰은 강씨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붕대를 감았음에 주목했다. 범인은 흉기 사용 중에 손에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상처의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강씨와 모친은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까지 찾아가 실랑이를 벌인 끝에 손가락 사진을 찍는데 아물기는 했지만 상당히 깊게 베인 듯한 상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씨는 사건 발생 전에 집에서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지만 강씨가 학원을 그만둘 때 자퇴서를 받던 학원 강사는 그의 손가락에 상처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이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수사관은 강씨가 이씨의 죽음에 대해 내뱉은 짧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말을 함부로 해서 죽었다."
조사를 받았던 용의자들 중 범행동기가 될 수 있는 것에 관한 유일하고도 구체적인 언급이다.

용의자 강씨와 피해자 이승래는 학원에서 단 한 번 얽혔던 사건이 있었다. 강씨가 학원을 그만 두기 보름여 전 강씨가 강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에게 시비를 걸다가 싸움이 벌어졌다. 강씨가 경찰에 신고까지 해서 소동이 커지자 이씨가 나서서 다툼을 거칠게 말리는 과정에서 강씨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강씨가 그 사건으로 원한을 품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면 싸우던 학원생이나 말리던 과정에서 심하게 화를 냈던 이씨의 누나가 목표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는데 이씨는 강씨와의 접점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씨가 범행 대상이 된 것에 대해서는 강씨가 분노표출대상으로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했던 사람이라는 점과 남들은 모르는 둘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을 경우,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말을 강씨 혼자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 등이 언급되었다.

압수수색 중 강씨의 군용 일기장인 수양록 노트에서 아래와 같은 글귀도 발견되었다.
경찰이 나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검찰도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
이 알리바이는 깰 수 없고 물증도 없다.
현장에서 수거한 머리카락은 모근이 없어 혈액형만 알 수 있었는데 숨진 이씨와 강씨는 똑같이 A형이었다. 강씨는 육군에서 전역하며 전투화 2켤레를 가지고 갔다고 그의 동기들은 증언했지만 압수수색 때 그의 집에서는 전투화 1켤레만이 발견되었는데 이 전투화는 사건 현장에 남은 족적과 크기도 문양도 일치했다.

이처럼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나 수상한 용의점이 많았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강씨를 강력하게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정적인 물증을 찾지 못하여 더 이상 진전을 못하고 답보 상태에 놓였다.

사건 발생 8개월 만인 2006년 7월 31일 오전 여수 쌍봉파출소에 강씨가 나타나 이씨를 자신이 죽였다며 자수한다. 다음은 용의자 강씨가 작성한 진술서 전문이다.
2005.11.29 밤 11:00 故 이승래씨를 죽이기 위해 필요한 물품(칼 두 자루, 워커, 군복)들을 챙겨 갔으나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 포기하고 돌아감.
2005.11.30 밤 11:00 경에 위와 똑같은 사유와 물품들을 준비하여 故 이승래씨를 죽이러 걸어서 찾아가
박○○(군대 선임)에게 왕따당한 것을 억지로 생각, 분노를 일으키게 하여 故 이승래씨를 200방 넘게 찔러 죽임.
죽인 뒤에 칼 두 자루는 (여천) 학동 근처 아파트 뜰에 버렸으며
워커, 군복, 가방은 집 근처 쓰레기장에 비닐봉투에 싸서 버림.
전 위의 사실들을 직접 쓰고, 인정하는 바입니다.
범행에 쓰인 흉기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했다고 밝힌 강씨는 형사들을 대동하여 직접 해당 마트로 가 자신이 구입했던 제품을 지목하기도 했다. CCTV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과도 2자루의 구입 기록은 남아 있었고 구입 날짜는 2005년 11월 30일 오전 11시경으로 확인되었다. 여천 학동의 모 아파트 풀밭에 강씨가 유기했다는 흉기를 찾기 위해 경찰은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여 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고 강씨는 이런 수사진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늦은 오후에 자신의 진술을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하여 경찰서를 다시금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실은 내가 안 죽였다. 심심해서 그랬으니 집에 보내달라."
일반인이었으면 바로 석방되지 않았겠지만 정신병력이 있다는 점이 참작되어 경찰은 강씨를 귀가 조치했다.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강씨와 강씨의 모친의 뒤를 캐기보다는 다른 미제사건들과는 달리 수사의 여지가 많은 당시의 현장 사진과 진술, 정황 증거들을 가지고 접근하는 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증거력을 확보하는 최신 수사 기법인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통합심리분석이 해결의 실마리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면 여수경찰서 061-660-8321로 제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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