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6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농협 주유소에서 소장 김 씨(당시 45세)가 누군가에게 둔기에 얻어맞아 숨진 채로 발견된 사건. 언뜻 보기엔 단순 강도살인사건으로 보였으나 김 씨의 죽음에 감춰진 이면에 조합장 선거와 운영 비리 등 지역 농협의 추악한 실태가 얽혀 있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 사건이다. 용의자가 나왔으나 그들을 범인으로 못박을 물증이 없어 결국 현재까지 19년째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피해자 김 씨는 사업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진 상태였는데 그런 그에게 광주 광산구의 한 지역농협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최고의 직장이었다. 40세였던 2000년에 농협에 입사한 그는 단 2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기능직으로서 농협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일했으며 2004년 3월 직원 3명을 관리하며 주유소 운영을 모두 책임지는 '주유소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농협의 조합장은 초대 광산구의회 의원을 지낸 A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조합장으로 재직하던 중에 이런 초고속 승진을 이뤄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김 씨를 조합장의 오른팔로 불렀고 조합장 A씨가 참석할 모임이 있으면 김 씨가 집에 들러 직접 모시고 갔다고 한다.
그러던 2005년 5월 16일 오전 8시 30분 주유소에 출근한 계약직 직원 B 씨는 문이 닫힌 주유소의 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상시라면 김 소장이 1시간 전에 먼저 출근하여 주유소 문을 열었는데 이 날따라 사무실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은 빨리 영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화장실의 창문을 통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3시간 뒤인 11시 30분 기름을 넣은 운전자들에게 사은품으로 주던 화장지가 다 떨어졌고 예비 화장지를 꺼내기 위해 사무실 안쪽에 있는 창고에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그 창고 안에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김 소장의 시신이 있었다! 창고 곳곳에는 혈흔이 낭자했고 시신은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다시피 한 상태였다. B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김 소장은 머리에 무려 16군데나 둔기에 맞은 흔적이 있었고 저항하다 맞은 모양인지 양팔의 뼈도 모조리 부러져 있었으며 주유소 금고에서는 주말에 영업을 하고 모아둔 지폐가 모두 사라졌다. 경찰은 없어진 돈이 180만 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서 수사 초기 경찰은 강도 살인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강도살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수상했다. 왜냐하면 김 소장의 시신이 지나치게 참혹했기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강도 살인이라면 본래 목적은 돈이지 사람의 목숨이 아니다. 즉, 돈을 훔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범행이 발각되었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것이므로 칼로 1번 찌르고 만다든지 혹은 둔기로 1번 내리치고 끝내는 게 보통이다. 일단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생사 여부를 따질 새가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듯이 둔기로 무려 16번이나 내리쳤다는 게 강도 살인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그 점에서 강도 살인의 가능성이 낮다.
2번째로 주유소 사무실이 너무 깨끗했다는 점이다. 일단 강도의 침입이라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느라고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기 마련인데 그런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창고문과 현관문 등에서 일부 핏자국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몸싸움 등을 벌였다는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 씨가 창고로 끌려들어갔던 것도 아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사건 이후 주유소에서 사용하던 몽키 스패너 1개가 사라진 사실도 드러났다. 사실 현장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아 무엇으로 살해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몽키 스패너 1개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범인은 몽키 스패너로 김 소장을 살해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피해자 김 소장은 키 180cm의 장신에 체중이 90kg나 나가는 상당한 거구였다. 이런 거구를 제압하고 살해한 범인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힘 좀 쓴다는 사람인 건 분명한데 강도로 보기엔 뭔가 이상했다. 사건 현장에는 CCTV도 없었을 뿐더러 이 사건을 본 목격자도 없어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의문점 때문에 경찰은 이 사건을 면식범의 소행으로 다시 보았으며 경찰 조사 결과 김 소장의 마지막 행적은 다음과 같았다. 사건 전날인 5월 15일 오전부터 주유소에서 일하던 김 소장은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마을 축구 대회에 참석했고 평소 친하게 지냈던 마을의 농협 조합장과 저녁 7시까지 주유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며 조합장이 돌아간 후에는 밤 8시 50분까지는 주유소 옆의 주택에 거주하는 건물주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농협 감사를 맡은 조합원 C씨가 오후 8시 50분에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들렀다가 김 소장과 건물주가 얘기하고 있는 걸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그 조합원 C 씨의 말에 따르면 그 날 밤 9시 20분과 25분에 2차례에 걸쳐 김 소장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하는데 그 조합원은 2번의 전화를 모두 못 받았고 1분 후인 9시 26분에 다시 김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답이 없었다고 한다. 김 소장의 휴대전화는 사건 다음 날인 5월 17일 오후 7시 26분 쯤 현장에서 수십 km 떨어진 광주 도심인 서구 쌍촌동을 마지막으로 신호가 끊겼다. 도대체 이 때 조합원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였을까? 범인이었을까? 아니면 김 소장이었을까? 이 증언으로 확실한 것은 김 소장의 행적은 5월 15일 밤 9시 25분 경에서 끊겼다는 것이며 범행이 일어난 시각은 5월 15일 밤 9시 25분~5월 16일 오전 8시 30분 사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층 수사 결과 경찰은 김 소장이 피살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범인이 김 소장을 살해한 데는 2개월 뒤에 치러질 조합장 선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김 소장이 저지른 비리 때문이었다. 김 소장은 농협 직영 주유소 관리소장이었고 면세유 담당 처리자였는데 전라남도 나주시에 기름저장탱크를 마련해 이 저장탱크로 2004년 1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3개월에 걸쳐 농민들에게 팔아야 할 면세유를 착복했다고 하며 그가 착복한 면세유는 다른 주유소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경찰은 빼돌려진 기름 용량과 농협 주유소 장부를 토대로 김 소장이 착복한 기름의 액수가 약 2억 원 어치에 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김 소장이 착복한 약 2억 원의 행방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경찰은 이 2억 원은 2개월 후에 치러질 조합장 선거의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김 소장이 가까이 지냈던 현직 조합장 A 씨가 3선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김 소장의 은행 계좌를 추적했지만 면세유를 착복해 만들어진 이 비자금의 행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단순한 강도살인 사건처럼 보였던 이 사건의 이면에는 조합장 선거와 관련된 추악한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된 인물은 김 씨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건물주였다. 건물주는 김 소장과 얘기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와 드라마 토지를 봤다고 진술했는데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혼란이 일었으나 곧 단순한 촌극으로 밝혀졌다. 건물주는 평소 공황장애를 심각하게 앓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가 왜곡되었다. 그래서 건물주는 곧바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2번째로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된 인물은 바로 그 문제의 조합장 A씨였다. 조합장이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김 소장의 비자금이 조합장 선거 자금으로 유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김 소장이 평소 조합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며 면세유를 빼돌려 선거 자금에 유용했다는 게 밝혀지면 제일 타격을 입는 사람이 3선에 도전하는 현직 조합장이기에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비협조적이었다. 주유소가 있던 마을은 조합장과 같은 성(姓)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소위 집성촌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조합장과 혈연 관계로 얽혀 있었고 농협 직원들 중에도 조합장과 동성동본이 많았으며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사건에 대해 입을 굳게 닫았다. 경찰이 묻기 전까지 먼저 나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마을 사람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사건 해결에 큰 지장을 주었다. 조합장에게는 사건 당시에 아들을 데리러 도서관에 다녀왔다는 알리바이가 있어 결국 체포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조합장의 알리바이가 밝혀지긴 했지만 조합장에 대한 의심은 도무지 거둘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김 씨의 마지막 전화 때문이었다. 김 씨는 5월 15일 밤 9시 20분과 25분에 2차례에 걸쳐 조합원 C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당시 농협 조합장 선거에는 현직 조합장 A의 3선을 찬성하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조합원 C는 반대파였으며 김 소장과는 서로 전화번호 조차 저장하지 않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 날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였을까?
만일 김 소장이 건 것이었고 범인이 조합장이라면 김 소장이 평소에 지지했던 현직 조합장 A에 대해 불만을 품었거나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신이 면세유를 착복해 A의 선거자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만약 범인이 건 것이었다면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한 수작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결국 현직 조합장 A는 3선에 실패하였고 조합장 선거와 관련된 추악한 이면이 숨겨져 있는 이 사건은 19년째 해결되지 못한 채 미궁 속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