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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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자신의 모친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범인 지모 군의 어머니는 본인이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5년에 어머니(지 군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편부가정에서 자랐다. 평소 자신의 아버지(지 군의 외할아버지)는 남동생(지 군의 외삼촌)만을 지나치게 편애하고 자신은 무시하고 구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데도 외할아버지가 딸을 차별하면서 학교에도 보내 주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도움 없이 뒤늦게 야간 고등학교를 힘들게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남편을 만났다.
이렇게 벼랑 끝에 몰린 괴로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탓인지 지 군의 어머니는 신혼 초부터 이상 행동을 보여 왔다. 남편에게 자살하겠다고 말하기도 하며 "나는 소중하기 때문에 찬물에 손을 넣을 수 없다. 당신이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해라", "보통 차를 사면 남들이 무시하기 때문에 고급 차를 사야 한다"라고 강요했다. 지군의 아버지는 이런 아내가 부담스러워서 집 밖을 겉돌다가 결국 가출하고 말았으며 이로 인해 이혼 소송까지 가게 되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부부 모두 별거를 시작함과 동시에 친인척들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도 가족들과 왕래가 없었고 어머니도 자신의 가족과 연을 끊고 아들과 자주 이사를 다니며 그의 어머니는 고립된 생활을 하였고 별거를 시작할 당시 중학교 1학년이였던 지군과 어머니 둘 뿐이였고 사건 직전까지 모자는 그렇게 지냈다.결국 누구도 두 사람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 이후 지 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성적에 극단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후 끊어졌던 연이 다시 이어지며 그의 아버지 고모 이모 아동학대를 알고있던 지군의 친구들 어머니의 유일했던 친구 한명까지도 그 어머니 성격에 문제가 많았다며 지군의 선처를 요구하였다.
범인 지 군(범행 당시 18세, 고등학교 3학년)은 초3 때 16시간 동안 공부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TOEIC 875점을 달성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전국 석차가 4500등에 들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도 용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생일선물을 사주는등 살가운 아들이였다. 모자가 사이가 좋을때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 먹으러 가기도 했다는 이웃의 증언이 있었다.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는등 서로간의 애정이 아예 없진 않았다.
지군의 어머니는 변덕이 심했다고 한다 지군에게 왜 나한테는 신경 안써주냐고 서운해 하다가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어머니를 세심하게 신경쓰면 공부나 하지 왜 나한테 신경쓰냐 하면서 때렸다고 한다. 이정도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입원을 권유할 수준이다.
지 군은 2006년에 부모가 별거를 하고 이혼 소송에 들어가면서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지 군의 어머니는 평소 "서울대 법대에 가라.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다", "전국 1등을 해야 한다"라고 강요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2등을 했을 때는, "니가 1등이 아닌데? 1등에게 졌는데?"라고 혼을 내면서 매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을 때는 "전국에 중학교가 몇 개인데? 5천개가 넘어. 5000등으로 만족할 거야?"라면서 잔소리를 하고 매를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성적이 떨어지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저녁 식사를 주지 않았으며 야구방망이나 홍두깨로 지군에게 비명이 새여나갈까봐 수건을 물리고 피묻으면 빨래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체벌용 바지까지 입혀가며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라 2008년 로스쿨로 전환하여 모집을 중단했다. 조금이라도 자녀의 진로에 관심이 있는 부모였다면 2011년에 대입시험을 보는 자녀에게 절대로 서울대 법대 진학을 운운할 수 없다. 결국 아들의 성적과 시험 점수에만 관심이 있고, 적성에 맞는 진로상담을 해 주거나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점에 대한 고충을 들어 주는 등 아들에게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인 2010년에는 컴퓨터에서 음란 동영상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아들을 찾아가 뺨을 때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살해되기 전 날에도 10시간을 엎드려 뻗치기를 시키고 잠도 못 자게 하면서 골프채, 야구방망이로 폭행을 가했다고 아들은 증언했다. 이는 지군의 온몸이 멍으로 가득했다는 친구들의 증언으로도 뒷받침되었으며, 검진 결과 엉덩이 살이 일부는 괴사 되었고 짝짝이였던 데다 종아리는 변색이 되어있었고 한쪽 귀에서는 난청 및 이명 증상까지 보였다고 한다. 뺨을 때리다가 고막이 파열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사건 5개월전에 아들이 견디다 못해 자살시도까지 하였으나 어머니에게 들켜 심하게 맞았다.
지군과 목욕탕을 같이 다녀온 친구가 증언하길 온몸에 피멍이 가득해서 놀라 물어보니 어머니에게 성적을 이유로 좀 맞았다고 했다고 한다 평소 성격이 밝았던 지군이였기에 그전까지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선생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중에 검찰조사에서 말했는데 선생님께 그 사실을 알리면 당연히 어머니 귀에 들어갈거고 그러면 자신은 맞아 죽을것 같은 공포감에 말을 못했다고 한다. 떨어진 성적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말라달라고 선생님에게 부탁한것이 전부였다. 지군은 극히 일부 친한 친구들에게만 학대 사실을 말했다고 한다. 왜 아이를 때리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어머니는 애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7살때부터 훈육을 빌미로 이어진 학대는 그렇게 사건당일까지 이어졌고 어머니 사망직전까지 이어진 매질에 검거 당시까지도 온몸에 멍이 완전히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전문가는 아들은 긴 시간 학대에 항거기능을 상실했다고 판단하였다.
지군의 아버지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7살 때 한여름에 긴팔, 긴바지를 입었기에 걷어보니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었더라. 아내가 나에 대한 증오를 아들에게 표출한 것 같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 고모도 "조카가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런 와중에 3일을 굶기고 3일 잠을 안 재우니 '엄마가 없어야 내가 산다'고 순간적으로 비정상적인 생각을 한 것 같다"며 "엄마가 이혼 소송을 하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더해져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던 것 같다. 조카에게 엄마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며 "교육열이 강한 줄만 알았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애를 학대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하왕십리동 방화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만에 다시 일어난 끔찍한 존속살해 사건이었고 그 피의자가 가정 폭력을 행사했던 점까지 닮았던지라 세간에서는 문자 그대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그 사건은 가해자가 무고한 사람까지 큰 피해를 입혔다는 게 참작 여지가 부족한 편이다.

한편 범인 지 군의 요청으로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루어졌으며 징역 단기 3년, 장기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때 지군의 아버지 담임선생님 그의 친구들, 이모도 조카의 선처를 요구하였다.

이은석과 비교되는데 지 군은 최후 진술에서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우는 등 뒤늦게 자신의 살인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피해자가 그동안 범인에게 한 짓을 감안하면 충분히 동정의 여지가 있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지 군 스스로 후회하며 어머니가 그립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은석 존속살해 사건과는 달리 지 군의 아버지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자식을 이해해 주는 모습을 보였는데 전술한 것처럼 아버지도 가해자만큼은 아니지만 큰 피해를 입었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영상 자식이 살인자가 되었으니 당연하다. 이은석은 도를 넘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군대폭력을 겪은 사람인데 사실 이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은석 존속살해 사건은 부모의 광적인 보상 심리가 원인인 반면 이 사건은 부모의 삐뚤어진 애정이 부른 참극에 가깝다.

지 군이 어느덧 고3이 되자 체벌은 더더욱 심해졌고 밥까지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는 학대까지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밥을 굶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잠을 못 자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3월 14일이 '학부모 방문의 날'이라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지 군은 학부모 회의나 상담을 하면서 전국 4000등을 한 것을 62등으로 고쳐 놓은 것이 들키면 더욱 무서운 체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진술했다.
또 범행 3일전부터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범행 전날밤도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골프채로 200대를 맞았다고 한다. 체벌이 끝나고 3시간후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 지 군은 당일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오전 11시쯤에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라는 공포감에 범행을 결심했다.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온 지 군은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의 왼쪽 눈을 찔렀으나 어머니가 저항하자 목을 졸랐다. 어머니가 강하게 저항하며 한동안 몸싸움이 치열했다고 그러다 둘다 지쳤고 둘은 나란히 누워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머니는 "XX야, 이러면 너 정상적으로 못 살아"라는 말을 했으나 지군은 "엄마는 몰라, 엄마는 내일이면 나를 죽일 거야. 이대로 가면 엄마가 나를 죽일 것 같아서 그래. 엄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미안해."라고 울며 말하면서 다시 흉기를 집어 들고 어머니(당시 51세)의 목을 2번 찔러서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뉴스 기사마다 살해 방식 묘사에 차이점이 있다. 왼쪽 눈을 찔렀다는 것은 그 잔인성 때문인지 기입되지 않은 기사가 많으며 목을 칼로 찔러서 살해했다는 것은 기사마다 내용이 동일하다. 얼굴, 특히 눈을 칼 같은 흉기로 공격한다는 것은 범죄심리학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 원한을 보여주는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피해자의 얼굴 부분에 여러 번 공격당한 흔적이 있다면 원한에 의한 범행을 우선적으로 수사할 정도이다.

지군은 범행 후에 어머니의 시신을 그대로 안방에 방치했다. 여름이 되어 구더기가 일고 냄새가 나자 공업용 본드로 안방의 문 틈새를 완전히 봉인하고 밀폐하여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해 버렸다.
지 군은 어머니의 시신을 안방에 놔두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였기 때문에 누구도 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웃과 친지들에게는 '어머니도 가출했다'고 둘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살해 후부터 집에서 자면 악몽을 꾸는 것이 두려워 학교에서 자는 등 학업에 급격히 소홀한 모습을 보여 여자친구를 걱정하게도 하였다. 특히 집안은 살해 후부터 전혀 치우지 않아 쓰레기더미였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추후 진술에서 지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이후 삶의 의욕을 잃어 막장처럼 살았고 시체처리 같은 일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고 한다. 범행후에 해방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렇게 8개월 동안 지 군은 시체를 숨겼다. 활달한 성격의 지 군은 교우 관계가 원만해 범행 후에도 친구들을 불러오기도 했고 집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범행 후에는 어머니가 계속 꿈에 나와서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지 군은 그대로 평범하게 지내면서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보았다.
수능을 본 이유는 고모의 증언에 의하면 "수능을 본 것도 뻔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수험표를 안 받아 갔다'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그치니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러 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지 군의 아버지는 별거 이후 월 100만 원 가량의 생활비를 보내오고 있었다. 2011년 6월 무렵 지군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행방을 물었지만, 지 군은 다른 이웃과 친지들에게 알렸듯이 '가출했다'라고 둘러대서 상황을 모면했고, '해외여행을 갔다'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하지만 11월 초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출입국 기록을 떼어 보면서, 2004년 이후 해외에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수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평소 왕래가 없던 아버지는 5개월이 지난 11월 22일에 집을 찾아왔다가 이상한 악취를 맡았고, 더불어 지 군은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고 안방 문은 본드로 막혀 있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아버지는 119구조대와 경찰에 연락하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결국 현장에서 어머니의 사체를 발견했다. 이때 지 군은 현관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고 반 넋을 잃은채 울고 있었다.아버지에게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안 버릴 거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이 상황에 놀라서 아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지 군은 23일에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서울광진경찰서는 지 군에게 구속 영장을 신청하여 24일 구속되었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형사가 먼저 묻지도 않은것까지 자세하게 진술하였다 아들은 울면서 어머니가 매일꿈에 나와 죽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도 못했고 또 경찰에 잡히는것도 솔직히 무서웠다 차라리 이렇게 들키니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고 한다.

재판에서 징역 단기 3년, 장기 3년 6개월이라는 부정기형이 선고됐고 이 과정에서 재판관이 '어머니로서 피의자를 동정한다.'는 발언을 했다. 다만 이는 재판을 하는 판사로서의 처신에는 부적절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 또한 원래는 집행유예를 검토하기도 했다는데 2012년 여름이 끝나갈 때 쯤 피고인과 검찰이 쌍방항소를 했으나 9월 6일 기각됐다. 검사 측도 15년형을 다시 구형했으나 마찬가지로 기각되어 판결이 확정되었다.

존속살해인 본 사건의 경우 일반 살인과는 달리 최저형량이 7년인데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에서는 3년형이 선고되어 박기서 이후 널리 알려진 살인에 최저형량 미만을 선고한 사례이다.

2011년 구속 기소된 때부터 형량 기간이 합산되기에 지군은 2014년 11월 24일이 지나서 만기 출소한 후 한 여자를 만났고 모든걸 털어놓고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2명 낳았다. 상식적으로, 살인범과 결혼을 한다는 것부터 본인에게 있어서 당연히 기피될 일인데다 사회적으로 전혀 안 좋게 보일 법한데도 여자친구가 지 군과 결혼한 것을 보면 지 군의 상황을 잘 이해해 준 듯 하다.

만약 범행 직후 바로 경찰에 자진신고하여 자수했다면 무죄나 집행유예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랬다면 정말로 '극단적인 심리 상태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벌어진 우발적 살인'이라는 주장이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 군이 감옥에서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 본인이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동심리학에서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양면성을 강조한다. 명주실처럼 질긴 것처럼 보여도 거미줄만큼 끊어지기 쉬운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간의 '감정의 교감'이 더 이상 이뤄지지가 않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강압이나 위압적인 상태가 지속되면 부모는 자녀를 자녀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자녀는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평소에 효자 혹은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부모처럼 보여도 어느 한 쪽이 불의의 사고로 가족 관계에 종말을 맞이하게 되면 정말 깔끔하게 잊거나 끊는다. 타인 이상의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며 관계를 단절하는 어떤 사건이 생기면 거부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상황은 감정 절단의 비교적 소극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이 살인 사건과 같이 처참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한겨레 기자의 사건 재구성 기록을 보면 범인은 7살 때 온몸에 피멍이 들어도 아프지 않냐고 묻는 아빠한테 "괜찮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보통의 7살배기 어린이들은 대부분 회초리로 종아리 한 대만 맞아도, 아파서 엉엉 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안정한 상황일 수 밖에 없었던 처지임은 분명하다.

아버지가 방송에 나와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징역 3년 6개월 판결에 "어떻게 자신에게 이렇게 큰 은혜가 있겠느냐"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안타깝고 나쁘게 말하면 무섭게도 한국은 현재에도 부모에 대한 증오 혹은 자녀에 대한 증오를 토로하는 가정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이나 관찰 시스템 같은 시스템이 단순하고 미흡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행정력 혹은 예산 부족이나 관련된 사회 인프라가 약한 지방의 경우는 더더욱 심하다. 무엇보다 한국은 오랜 관습인 유교 사회답게 '효'를 중시 혹은 당연시하는 풍토가 옛부터 표면적이나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가족의 붕괴'에 대한 사회적인 보완 장치가 이에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처량할 정도로 미비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의 형태가 자녀가 부모에게 헌신하는 관계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막상 이 연결고리가 끊어져 붕괴하는 상황이 오면 마땅한 해결책이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회에서 어떠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그것이 사라졌을 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가족관계 유지가 각 구성원의 복리와 배치될 때 이를 조정해 주거나 지원해 주는 (특히, 가족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법률조항이 거의 없다.

'부모를 죽이고 싶다' 혹은 '자식을 죽이고 싶다'라는 극단적인 감정의 발로를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상황인데 이런 감정이 돌출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기밀성이 유지되는 상담과 개입을 하는 게 이와 같은 패륜 살인의 예방에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도록 변했다는 것이 문제다.

공개적으로 돌출될 경우 기사거리에 목마른 인터넷 언론 매체가 '패륜XX 결국은...'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써서 마녀사냥의 먹이감이 되거나 신상공개가 되기도 하면서 대중의 뭇매를 맞는다. 피해를 계속 받는 답조차 없는 상황에 사회에 고충을 토로해야 함에도 그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하지도 못하게 되어 버리니 누적된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지도 못하는 건 물론 적절한 조치나 도움은 커녕 방치 상태로 푹푹 썩어가면서 극단으로 치닫다가 결국엔 이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되어 비극적이고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이은석 사건과 이 사건을 비슷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은석 쪽이 피해 강도는 훨씬 심각했고 처벌도 (상대적으로) 강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은석의 재판이 열렸던 시기가 2010년대보다 유교적 관념이 다소 강했던 2000년대 초반이었기에 재판이 같은 시기에 열렸다면 역시 관대한 수준의 같은 판결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더욱 더 소름끼치면서도 때로는 안타까운 현실은 이러한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여전히 아동 학대 처벌 강화에 관해서 "그럼, 애들이 다른 사람들을 버릇없게 대하는 태도는 도대체 누가 고치냐?"는 식의 구태적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회 부적응자, 학교폭력 가해자, 중범죄자들의 상당수가 유년기 시절 심각한 아동 학대를 겪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올바른 주장이 될 수 없다. 강도 높은 체벌은 아이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자로 만드는 행위이며, 이건 (특히 군대 관련 사건에서 자주 발생하는) 집단괴롭힘을 통해서 사회규율에 억지로 길들이겠다는 식의 발상과 본질적으로 다름없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내라면서 두들겨 패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애초에 다른 유연한 동기부여 방법과 납득과 설득을 통한 합의적 방법론들을 놔두고 폭력과 강압으로 애들을 쉽고 편하게 휘어잡고 억지로 통제하려는 전근대적 마인드가 만능임을 주장한다면 지금 시대에는 구제불능급이라고 본다. 정상적인 소통과 대화, 공감의 채널마저 파괴하는 짓이며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결과를 낳는지는 과거 일본군에서 발생한 사건들과 부작용들만 찾아봐도 무수히 나온다. 더욱 심각한 건 상당수의 한국 부모들의 성격이 대체로 단순해서 긍정적 의미의 벌(penalty)과 체벌(corporal punishment) 그리고 학대(abuse)의 구분선이 매우 모호할 정도로 교육 개념에 지나치게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고 어떻게 8개월 동안 시신을 방치한 것도 모자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할 수가 있는 걸까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피해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 설명은 쉽게 따지면 해리성 장애와 무기력증이라 할 수 있다.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던 어머니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피해자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범죄를 회피 혹은 부정함으로써 어떻게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발버둥을 침과 동시에 어차피 일어난 일이라며 그냥 자포자기한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정말로 사이코패스나 보통 범죄자였다면 재빨리 시신을 치우고 증거를 인멸하며 거짓 알리바이를 꾸미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태연하게 일상을 살았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피해자는 아버지가 찾아와 방문을 열고 어머니의 시체를 목격할 때까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반쯤 넋을 놓고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생활했다. 자신의 죄를 억지로 외면함과 동시에 자신은 이미 끝장난 사람이라는 심정으로 살은 것. 그러다 보니 언론들과 전문가들, 인권단체들도 가정폭력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정부와 사회를 비난하며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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