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4일 울산에서 아이의 아빠와 불륜 관계를 갖고 동거하던 여자가 동거남의 딸 울산호연초등학교 2학년 이서현(사망 당시 만 7세) 양을 폭행하여 죽게 만든 사건.
흔히 이 사건을 '서현이 사건'이라고 한다.
사건 당일은 이서현 양이 다니던 학교인 울산 호연초등학교에서 부산 아쿠아리움으로 소풍을 가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그 다음날 울산에서 인천으로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이 양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꼭 이 소풍에 참여하고 싶어했기에 원래 예정돼 있었던 이삿날까지 미뤄 둔 상태였다. 막상 당일 동거녀 박 모씨(당시 39세)는 이서현 양을 소풍에 보내주지 않았으며 이 양이 소풍을 보내 달라고 하자 사정없이 폭행하였다. 이로 인해 이 양은 갈비뼈 24개 중 무려 16개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고 부러진 갈비뼈에 폐를 다쳐 숨을 거뒀다.
박 씨는 증거인멸을 위해 온 몸에 멍이 든 이서현 양을 멍이 빨리 빠지라며 목욕탕에 집어넣어 버렸으며 이미 신체상해가 컸던 이 양은 욕조 안에서 사망했다. 박 씨는 이 양이 욕조 안에서 사고로 익사한 것으로 위장한 다음 119에 신고하였지만 119 구조대원들은 시신의 상태를 보고 바로 눈치를 채 경찰을 불렀고 박 씨는 체포되면서 폭행치사로 입건되어 끝나는 듯 했으나.....
조사 결과 2011년부터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서현 양을 괴롭혀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폭행치사가 아닌 학대치사, 상습폭행, 아동학대로 죄명이 바뀌었다. 2011년에는 이 양의 머리를 죽도로 치고 등을 손으로 쳤으며 2012년 5월에는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발로 허벅지를 마구 차 뼈를 부러뜨렸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서현 양에게 벌을 주는 문제로 이서현 양의 아빠와 말다툼이 있은 후 아이의 아빠가 집을 비우자 욕실로 이 양을 끌고 가 손발에 뜨거운 물을 뿌려 2도 화상을 입히기까지 하였다.
검사 결과 엉덩이의 근육은 아예 소멸하고 섬유질로 되어 있는 둔부조직섬유화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 증상은 파손된 조직이 다 아물기도 전에 재차 폭행을 가할 경우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주목할 점은 2011년 포항에 살던 당시 어린이집 교사가 이서현 양의 머리에 피가 엉겨붙어 있고 몸에 멍이 있는 걸 보고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를 했던 과거가 있다는 점이다. 당시 아동보호기관에서는 이 사건을 접수하여 박 씨에게 교육을 인수하게 하였으나 법적 한계 때문에 이 양을 격리시킬 수 없었으며 이 교육마저도 인천으로 이사간 후 박 씨가 단순히 교육 받기를 거절하여 더 이상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아동보호기관측의 잘못이 아니라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법적 조치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아동 보호 관련 법규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이서현 양의 아빠 이 씨(당시 46세)는 부동산 분양업 때문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집에 방문할 수 있었으며 이런 박 씨의 흉악한 뒷모습을 몰랐다고 한다. 박 씨는 이 양의 다리가 부러졌을 땐 계단에서 굴렀다고, 화상을 입었을 땐 온수 보일러를 틀어 두었는데 모르고 데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당일에는 서울에 있는 이 씨에게 이 양이 소풍을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심지어 이 양의 장례식에서도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이 양이 죽은 이유는 사고였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박 씨는 대외적으로는 교육 잘하고 유능한 착한 엄마 행세를 하였으며 피해자 이 양 역시 성적도 우수하고 예의도 좋아 누구도 가정폭력(아동 학대)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양은 박 씨를 '어머니' 라는 호칭으로 불렀으며 동네 아파트 주민들은 박 씨가 가정 교육을 잘 시키는 것으로만 알았다. 이 양은 반장까지 하였으며 박 씨는 반의 학부모회의 대표직에 회장직까지 맡기도 하였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주변인들은 과거 그냥 지나쳤던 요소들이 가정폭력을 암시했던 것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네 주민들은 언제부턴가 이 양이 사계절 내내 긴팔 옷만 입고 다녔다는 걸 눈치챘으나 그 원인이 설마 가정폭력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려진 바로는 박 씨는 전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별거에 들어간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전 남편이 키우는 자녀의 원활한 학교 생활을 위해 이혼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자녀가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라는 말을 듣거나 이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려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혼을 미뤄 왔다고 하자 당시 담당형사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고 한다. 그 말은 정식 이혼 절차가 없기에 동거남과의 결혼은 무효이고 법적으로 이양과 모녀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장검증을 할 때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옷을 뒤집어써서 노출을 피했으며 모든 걸 알고 분노한 아파트 주민들이 몰려와 욕을 퍼부으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부 주민들은 끔찍한 만행을 알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런 데다가 범인은 자신의 친아이들에게는 엄청난 모성애를 쏟는 통화를 하기까지 해서 역공분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옥중에서의 부동산 공부를 계획하기부터 하는 죄의식도 없는 여유로움까지 보였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절도 행위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피해자가 사망하기 몇 달 전 스승의날 기념행사를 위해 한 학부모의 자택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도중 안방 화장대에 있던 시가 400여만원의 반지 두개를 보고 모여 있던 학부모들의 시선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이를 절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2300원을 훔쳐갔다고 하면서 폭행, 살인을 한 것이다. 또한 박씨는 사기죄 기소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2월 13일에 친부 이 씨에게도 아동 학대를 방조한 죄로 형사처벌이 결정되었다.
12월 17일 울산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박 씨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한것은 맞지만 살인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파렴치한 모습에 재판을 방청하던 이 양의 친모와 방청객들은 분노했으며 재판을 마치고 나오던 박 씨에게 어떤 시민이 물을 끼얹기도 했다.
2014년 3월 11일 검찰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여담으로 이 때 사형을 구형한 검사는 훗날 스폰서 사건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 김형준이다. 4월 11일 울산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를 내렸는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12 마침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도 칠곡측에서 별도로 선고를 내리면서 국민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문서 참고.
10월 16일 2심에서 1심과는 다르게 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1심과는 달리 범행 당시 살인에 관한 미필적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55분여간 인체 주요장기가 모여 있는 몸통을 집중적으로 가격한 것은 충분히 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며 "피고인의 폭행으로 핏기없이 창백해진 어린 아이에게 재차 폭행을 가한 점에 비춰 볼 때 사망할 것이라는 것을 피고인이 충분히 인식 또는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18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다.
또 "119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욕실 입구 바닥, 욕실 벽면, 내부 손잡이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을 지우는 등 범행을 숨기려 한 점 등을 고려하면 구호조치와 관련한 피고인의 진술도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자발찌 청구에 관해서는 재범 가능성이 낮고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2015년 6월 24일 친부에 대한 재판에서 항소법원(2심)인 울산지법은 친부 이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1심에서는 친부 이 씨에게 동거녀 박 씨가 이 양을 구타하는 것을 인지하고도 방조했다는 이유를 들어 징역 3년을 선고했는데 이러한 1심 판결에 대해서 친부는 양형이 부당하다고(무죄주장) 항소하였고, 반대로 검사는 오히려 1심의 양형이 가볍다고 역시나 항소하였던 터였다. 이에 2심에서는 검사 측의 이유를 들어서 1심보다는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그리고 동년 11월 15일 대법원은 친부에게 징역 4년형을 내린 원심(2심 판결)을 확정지었다.
2015년 6월 30일 친모가 친부와 계모를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에서 8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