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이학만이 현직 경찰관 2명을 살해한 사건.
이학만은 2004년 8월 1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 S모텔에서 애인 이모(35)씨에게 흉기로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었다.
서울서부경찰서 강력2반 소속인 심재호 경사와 이재현 순경, 정승화(39) 경장은 그 날 오후 8시 이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섰다.
심재호 경사 등이 이학만과 만나기로 한 노고산동 C카페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 직전이었다. 정 경장은 도주로 차단을 위해 바깥에서 대기했다. 약속시간보다 22분 늦게 온 이학만이 애인과 마주앉은 오후 9시 25분쯤 심 경사는 경찰 신분증을 제시했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던 찰나 이학만은 돌연 흉기를 꺼내 심 경사의 심장과 옆구리를 찔렀고 쓰러지는 선배를 붙잡던 이재현 순경의 등을 연이어 찔러 순식간에 주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현 순경은 피의자 이학만을 검거하고자 다리 한쪽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커피숍 안 사람들에게 119를 불러 달라고 외쳤으며 이학만의 다리라도 잡아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었고 다가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악을 쓰고 위협하던 이학만은 이재현 순경을 무려 9군데나 칼로 찔러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도주해 버렸다. 그렇게 이학만은 대한민국 경찰청의 유능하고 젊은 강력반 형사 두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렸다. 심재호 경위는 부인과 슬하 2남의 가장이었고 이재현 경장은 미혼의 총각이었다.
2004년 8월 1일 - 이학만이 오후 9시 25분 서울특별시 마포구 노고산동 C커피숍에서 서부서 심재호 경사, 이재현 순경을 흉기로 살해 후 도주하였다.
2004년 8월 2일 - 오전 8시 55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6동 주택가에서 이학만의 택시가 발견되었다. 주변 공터에서 피 묻은 바지와 양말이 발견되었고 공범 김모 씨가 검거되었다. 이학만의 공개수배령이 전국에 내려졌다.
2004년 8월 3일 - 이학만의 현상금이 2000만원으로 책정되었으며 수배 전단 5만 장이 배포되었다. 이학만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된 인터넷 아이디가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삼성아파트에서 접속되었다. 경찰은 특공대, 기동대, 강력계, 파출소 소속 요원 3백여명을 총기로 무장시킨 채 투입해 수색 작전을 시작했다.
2004년 8월 4일 - 경찰이 100여 가구를 수색한 결과 삼성아파트에서 접속된 인터넷 아이디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수배 전단지에서 본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4년 8월 6일 - 이학만의 현상금이 50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2004년 8월 8일 - 이학만이 오후 6시 55분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3동 H빌라에서 할머니와 손자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다 검거되었는데 자해를 시도하여 이대목동병원에 후송되었다.
이학만은 2004년 8월 8일 오후 2시쯤 강서구 방화3동 H연립 2층 박모(여·49)씨 집에 중간방 창문을 통해 침입한 뒤 거실로 나와 길이 30㎝(날 길이 16㎝)의 흉기로 박씨와 박씨의 외손자 김모(4)군을 위협했다. 이학만은 “내가 경찰을 죽인 살해범”이라고 밝혔고 박씨는 “흉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박씨가 손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박씨는 “내 아들 같다. 절대 신고하지 않겠다. 국수를 끓여주마”라며 안심시킨 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옷이 더러워진 이학만에게 함께 살던 사위의 셔츠와 새 칫솔을 주고 점심상도 차려줬다. 이학만은 “나는 곧 죽을 테니 돈이 필요없다”며 손자에게 1만 3000원을 건넸고 “경찰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유가족에게 미안하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약수터에서 씻고 길에 버려진 옷을 주워 입으며 생활했다”고 주장했다.
이학만은 오후 6시 30분쯤 중간방에 들어가 컴퓨터로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찾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박씨는 “청소를 해야겠다”며 안방에 들어가 진공청소기를 켜 놓은 채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아들 신모(29)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두 명 죽인 사람이 지금 집에 와 있다. 네가 신고해야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박씨는 경찰이 들어올 수 있도록 중간방 창문을 열어 놓기도 했다.
신씨가 6시 37분 112에 신고하면서 “경찰 살해범이 있다고 하는데 조심스럽게 찾아가 보라”며 주소를 알려줬고 경찰은 6시 42분 공항지구대 소속 경찰관 4명을 현장에 보냈다. 출동한 경찰이 박씨의 집 초인종을 누르자 박씨는 김군을 업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인터폰 화면으로 경찰을 확인한 이학만은 안방에 들어가 흉기로 배를 찌르며 자해를 시작했다. 그 사이 경찰은 중간방 창문으로 진입해 6시 55분 이학만을 붙잡아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 옮겼다. 이때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들것에 실려 나오는 이학만의 사진이 다수 촬영되었다.
이학만은 “죽게 내버려두지 왜 살려뒀냐”고 경찰에게 말했고 2시간이 넘게 응급 수술을 받은 뒤 밤 11시 5분쯤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고 의료진이 전했다.
박씨의 집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은 “이학만이 1996년부터 1년 반 동안 검거 현장에서 300~400m 떨어진 한 옥탑방에 거주했다”며 “검거 현장 인근 공터에서 이학만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흰색 크레도스 승용차가 연료가 다 떨어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차량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서 도난당한 차량이었다. 경찰은 “차를 타고 숨어 지내다 연료가 떨어지자 차를 버리고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씨 집 중간방의 경우 창문에 창살이 없고 언덕길에 인접해 있어 외부에서 침입하기 쉬웠다”고 설명했다.
이학만은 살인죄가 적용돼 최고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 중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숨진 경찰관이 가슴 등 급소를 관통당해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 데다 직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을 살해해 특수공무방해죄(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적용이 가능하다.
2004년 12월 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피고인은 우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할 뿐 아니라 정당한 이유 없이 공권력에 정면 도전한 만큼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이학만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05년 2월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사전에 경찰관 살해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고, 이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어 아직은 교화의 필요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