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영아 청부납치 모친 살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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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경기도 평택시에서 발생한 영아 납치 및 살인사건.

김모 씨(당시 38세)는 1990년에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나, 13년이 지난 2003년을 전후로 남편과 잦은 불화를 겪기 시작했다. 가정 생활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김씨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드나들게 되고, 그곳에서 5세 연하의 최모 씨(당시 33세, 화물차 운전기사)를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최씨는 상당한 재력가의 아들이었고, 이에 매력을 느낀 김씨는 가출하여 최씨와 동거에 들어갔지만,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하여 온갖 거짓말을 한 끝에 최씨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로 결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김씨는 그 당시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고, 이를 알고 있었던 그녀는 미혼모 보호시설 등에서 아이를 데려오려고 하였다. 하지만 보호시설에서도 몇 차례 거절당하자, 급기야 심부름센터를 찾아가 사장 정모 씨(40세)에게 착수금 4,000만원을 주며 신생아를 구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리고 "성공할 경우 추가로 3,000만원을 더 주겠다"는 조건을 덧붙이자, 당시 사업 실패 및 도박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정씨는 김씨의 의뢰를 수락했다.

이후 김씨와 최씨는 2003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김씨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언제 거짓말이 탄로날지 몰라 초조해진 김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혼인신고도 미루고 출산에 대해서도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아 함께 돌아오겠다'며 의심을 피했다. 거짓말만 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간다고 말해놓고 수도권의 모처에서 몇 달 동안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치밀한 면모도 보였다.

한편 김씨의 의뢰로 신생아를 찾던 정씨는 비슷한 처지였던 자신의 처남과 친구까지 끌어들여 어떻게든 신생아를 구하려 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김씨가 원하는 아이를 찾지 못하자 안달이 난 이들은 결국 아기를 납치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004년 5월 24일 이들은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의 한 주택가 인근에서 범행을 모의하던 중 우연히 생후 70일이 된 아들을 안고 걸어가던 고모 씨(당시 21세)를 발견, 고씨를 미행하다 차량 2대로 좁은 도로를 막아선 뒤 저항하는 고씨와 아기를 차 안으로 밀어넣어 납치했다. 이후 이들은 아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며 저항하는 고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강원도 고성군의 한 야산에 암매장한 뒤, 정씨가 아이의 삼촌으로 위장하여 아기를 김씨에게 넘겼다. 하지만 정씨 일당은 아이를 넘겨준 이후에도 김씨를 찾아가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남편(최씨)에게 사실을 전부 털어놓겠다"며 협박, 5회에 걸쳐 총 1억 4천만원을 갈취했다.

한편 살해당한 고씨의 시신은 6월 15일 오후 1시경 미시령에서 도로확장공사를 하던 도중 나무를 베던 벌목꾼들에 의해 온몸이 묶인 채 마대자루에 들어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이 사건은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매우 큰 사건들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시기였기 때문. 엄마와 아기가 실종된 2004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시체가 발견된 6월에는 김선일 납치 살해 사건이 있었다.

사건 발생 7개월 후인 2005년 1월 22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이 뺑소니 사고 혐의로 수배중이던 정씨의 차량을 발견, 경찰차를 보고 당황한 운전자의 태도와 차에 흙이 묻어있는 걸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검문을 시도했으나, 정씨는 이에 불응하여 도주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3km가량의 추적 끝에 정씨 일당을 검거, 조사하던 중 차량 안에서 배터리가 없는 휴대전화를 발견하고 출처를 추궁했으나 이들은 "길에서 주웠다", "차를 살 때부터 안에 있었다"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들의 이런 태도와 흙투성이가 된 차체, 트렁크에 삽과 장갑 등이 아무렇게나 흩어진 점 등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마련하여 가장 마지막에 연락한 번호로 연락을 하자, 받은 사람은 고씨의 친구였다. 돌아온 말은 "내 친구가 7개월 전에 살해당했는데, 당신들은 어째서 그 번호를 사용하고 있느냐"는 대답. 이로서 핸드폰이 고씨의 것임이 확인되었고, 경찰의 추궁 끝에 정씨 일당은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결국 사건을 맡은 서울강남경찰서 강력5반은 23일 새벽 아기의 안전을 고려, 철저한 보안체제 속에서 김씨의 집을 급습했다. 다행히도 경찰의 우려와는 달리 아기는 무사했고, 신생아에게 필요한 모든 예방접종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씨의 집에 있던 유아용품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유명 브랜드 제품뿐이었다. 김씨는 경찰에 연행되었고, 아기는 경찰의 인도 하에 친부에게 돌아갔다.

김씨는 경찰에서 "미혼모가 낳은 버려지는 아이를 원했다. 이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다."면서 "그 사람(최씨)과 같이 살고 싶었다. (정씨 일당이) 그렇게까지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또한 정씨 일당도 "아이의 친모를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저항이 너무 거세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정씨의 처남과 친구에게는 무기징역을, 영아 납치를 청부했던 김씨와 납치에만 관여했던 정씨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5년을 선고했으며, 후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2명은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동일한 형이 선고되었다. 김씨와 정씨는 이 사건의 주범이자 만악의 근원인데, 사람을 죽이라고 청부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데려오라고 청부하였기 때문에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할 수 없어,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당시 담당 판사도 법리상 어쩔 수 없다지만 이 판결은 정말 아니다 싶었는지, 굉장히 화가 나서 감정에 복받친 상태로 선고이유문을 낭독하였다.
외양만의 행복을 좇는 가치관이 전도된 여자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인간성이 마비된 남자의 비극적 만남이, 아기를 출산한 기쁨으로 가득한 한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어머니와 아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패륜적 납치와 살인을 불러왔다.

그 후 정씨의 처남과 친구는 현재 수감중이며 김씨와 정씨는 2009년 만기 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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